‘가짜 카지노’ 사기도박…속은 줄도 몰랐다
바람잡이 등 동원…중국으로 골프관광 유인
국내 재력가 26명에 77억 뜯은 도박단 적발
국내 재력가 26명에 77억 뜯은 도박단 적발
사업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2007년 5월 골프연습장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김아무개(49)씨와 함께 골프장에 갔다 유아무개(36·여)씨를 만났다. 유씨는 “급히 전화할 곳이 있다”며 김씨에게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부탁해 왔다. 그 뒤 김씨는 그녀를 우연히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유씨는 “고마웠다”며 술자리에 동석했고, 이들은 함께 골프를 치며 가까워졌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한달 뒤 중국으로 골프관광을 떠났고, 김씨는 이들과 함께 들른 중국 호텔 안 카지노에서 하룻밤 새 9억5000만원을 잃었다. 김씨가 잃은 이 돈은 ‘꽃뱀’ 역할을 한 유씨와 김씨, 카지노 업주 등이 나눠 가졌다고 한다.
영화 ‘타짜’에서나 보았을 법한 수법으로 중국행 골프관광을 함께가자고 꾄 뒤, 가짜 카지노에서 수십억원대의 사기를 벌인 도박단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함께 도박을 하고 돈을 잃은 것처럼 꾸며, 피해자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도록 치밀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함윤근)는 12일 중국에 가짜 호텔 카지노를 만들어 26명의 피해자에게서 77억여원을 뜯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로 김아무개(49)씨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유 아무개(36·여)씨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도주한 총책 최아무개(58) 등 4명은 기소 중지했다.
최씨 등은 중국 푸젠성 샤먼시 등에 있는 호텔 연회장 3곳을 빌려 가짜 카지노 시설을 차려놓고 2005년 5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한국인 골프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고급 회원제 클럽, 골프연습장 등에서 재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점찍어 놓았다가 중국 골프관광을 함께 가도록 꾄 뒤, 카지노에서는 ‘바람잡이’ 노릇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인책들은 피해자와 함께 돈을 잃긴 했지만, 미리 피해자가 잃은 돈만 나눠 갖기로 서로 짰기 때문에 실제로 돈을 잃은 사람은 피해자들뿐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여권을 카지노에 맡기고 거액을 빌린 뒤 도박을 벌여 “도박 빚을 못 갚으면 여권을 못 찾아 귀국할 수 없다. 내가 대신 남아 인질로 있을테니 귀국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대신 갚아 줄테니 한국에서 되갚으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이중으로 속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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