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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계엄군 곤봉세례에 ‘정신병’ 얻은 대학생의 어머니

등록 2010-05-20 19:31

1980년 5월18일부터 21일까지 금남로와 광주역 사이에 있던 광주 시외버스 공용터미널과 지하도는 무고한 살상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피의 관문’이었다. 당시 장부용 학생처럼 ‘난리’를 피해 귀향길에 나선 시민들에게 공수부대는 무차별 폭행을 자행했다.
1980년 5월18일부터 21일까지 금남로와 광주역 사이에 있던 광주 시외버스 공용터미널과 지하도는 무고한 살상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피의 관문’이었다. 당시 장부용 학생처럼 ‘난리’를 피해 귀향길에 나선 시민들에게 공수부대는 무차별 폭행을 자행했다.
귀향길 터미널 근처에서 봉변
아들은 27년간 집 밖에 안나가
“자식 살릴 일념으로 견뎌왔제”




[5·18 30돌-5월을 지켜온 여성들] ⑮ 문금옥

문금옥(72). 그의 눈가는 지금도 마를 날이 없다. ‘5월 그날’ 이후로 꼭 30년이 흘렀지만, 맏아들 장부용(49)은 심연과도 같은 자기만의 방에서 나올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면 열 번이라도 그냥 죽고 말았을 것이야. 오로지 자식 살려볼 일념 하나로 견뎌온 삼십년 세월이었제.”

1980년 5월 당시 아들 부용은 광주 송원공업전문대(송원대학의 전신)에 입학해 고향인 충북 단양을 떠나 광주에서 유학중이었다. 계엄군과 시민들의 충돌 사흘째인 20일, 부용은 고향집으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학교는 이미 휴교령으로 문을 닫았고 신입생인 터라 아직은 물도 인심도 낯선 광주에 더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 광주역 광장에서는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이 목숨을 잃는 등 학살이 절정에 이르자 시민들이 마침내 총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5월24일, 단양군 적성면 소야리에서 남편(장이식)과 함께 밭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 문금옥은 마을 이장의 다급한 확성기 소리를 들었다. 부용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니, ‘광주에서 폭도들이 난리를 일으켰다’는 보도를 보고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내 자식이 다칠 줄이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20일 그날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계엄군의 곤봉세례를 받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부용을 상인들이 데려다 보호하다 학생증 주소를 보고 전보를 보낸 것이었다. 구급차를 구할 길이 없는 상황이라 열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왔지만 아들은 몸만 만신창이로 다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잦은 헛소리를 해대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부용의 행동은 점차 난폭한 성향을 띠었고, 급기야 발작처럼 살림살이를 부수고 부모를 폭행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가족들로는 감당할 길이 없어 단양의 한 병원에 데려갔다. ‘정신이상’이라고 했다. 그래도 자식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서울 청량리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새벽 일찍 산길을 걸어 나와 읍내에서 기차를 타면 이튿날 새벽 5시에야 청량리역에 도착하는’ 험한 길이었다. “그때부터 국립의료원이 문을 여는 오전 9시까지 기다리느라 아들과 우두커니 앉아 있자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그렇게 서울, 대전, 청주 등으로 큰 병원을 찾아다니기를 10여년, 최종 결론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3년 남짓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때 말고는 집 밖으로 단 한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어느새 반백의 중년이 돼 버렸다.


그사이 맏아들 병간호하느라 다랑논이며 밭뙈기마저 모두 팔아 부부와 7남매 식구들은 나물과 풀뿌리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살림은 피폐해졌다. 그보다 더 힘든 건 ‘광주의 진상을 모르는’ 이웃사람들의 수군거림이었다. 결국 91년 청주로 이사를 나와야 했다.

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른 진상조사 과정을 거쳐 부용은 국가유공자(장해 1급 정신분열증)로 지정됐다. 그러나 연금 형태의 지원금은 전혀 없고 치료비만 면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일시불로 받은 보상금으로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집을 구해 대학생 자취방을 놓고, 때때로 건설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 부부는 그나마 스스로 자라 제 앞가림을 하고 있는 6남매가 다행스럽다. 하지만 동생들이 결혼할 때마다 ‘나도 장가 보내 달라’고 떼를 쓰는 부용, 어머니는 자신과 남편이 죽고 나면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이제 저 아이에게 남은 날이라도 국가기관 같은 곳에서 최소한의 보호나 치료를 해주었으면 싶어요. 우리 같은 사례가 한둘이겠어요? 더 고통스럽고 심란한 피해자들도 많으니까요.”

2005년 처음으로 ‘5·18’ 기념행사에 다녀온 문금옥은 ‘다시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5·18 묘역에서 자식을 묻은 어머니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우는 것을 보니 차마 다시 그 광경을 볼 엄두가 나지 않네유.”

지금까지 ‘5·18’ 관련해 4362명이 피해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폭도로 몰렸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상처는 보상금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부용’처럼 그 고통이 끝날 기약도 없다.

얼마 전 척추수술을 받은 칠순의 노모는 아직은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밖에 없지유.” 문금옥에게는 30년 세월 일년 열두달이 모두 오월이다.

정리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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