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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흑백 사진 속 ‘광주의 외침’ 품은 외사촌 자매

등록 2010-05-25 19:19수정 2010-05-25 21:24

2008년 5월 5·18민중항쟁 28돌 기념 ‘제4회 서울청소년대회’ 문예공모전에서 입상한 학생들이 서울광장에 마련된 ‘5월 민주영령 추모단’에 묵념하고 있다.  5·18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
2008년 5월 5·18민중항쟁 28돌 기념 ‘제4회 서울청소년대회’ 문예공모전에서 입상한 학생들이 서울광장에 마련된 ‘5월 민주영령 추모단’에 묵념하고 있다. 5·18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
‘오월정신 시’ 나란히 최우수상
몰랐던 진실 충격 “슬프고 분해”
“항쟁 기억…민주주의 이어야”




[5·18 30돌-5월을 지켜온 여성들]
(18) 마미혜·이유민

마미혜(16·풍문여고 1), 이유민(16·숙명여고 1). 동갑내기 외사촌 자매인 두 학생은 2008년 5·18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4회 서울청소년대회’ 문예공모전에서 나란히 시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교과서에서 단 두 문장밖에 나오지 않는 ‘5·18’의 의미를 10대의 감성으로 찾아내 시의 언어에 담아냈다.

‘오월의 푸른 하늘 빛이나/ 검은 곤봉과 장총의 섬뜩함이/ 붉은 민주화의 꽃잎과 함께/ 색색이 선명하게 그려졌다면/ 덜 슬프고 아팠을까?’(‘흑백 사진 한 장’)

미혜는 중2였던 그해 봄 어느날 학교 도서관에서 한 장의 흑백사진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속에는 자신보다 서너살 많아 보이는 교복 입은 여학생이 총검을 둔 군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아…이건 뭘까?” 궁금해하던 미혜는 ‘5·18 당시 상황’이라는 사진설명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어른이 끌려가는 모습이었다면 그만큼 충격받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부터 미혜는 5·18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흑백사진 속 5·18의 진실을 알게 됐다. 마침 선생님이 ‘5·18 문예공모전’을 알려줬고 미혜는 용기를 내서 시를 써 냈다.

2년 전 유민이 역시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선생님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5·18을 ‘빨갱이의 반란’이라고 하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과 ‘민주화를 위한 광주시민의 용기’라고 하는 중학교 선생님의 서로 다른 말에 머리가 아팠다. 텔레비전에서 본 다큐멘터리 속 광주 상황은 더 이해가 안 됐다. 미혜의 권유로 함께 응모한 ‘5·18 문예공모전’에서 유민이는 그 정반대의 시각을 시로 풀어냈다.

‘예순 살의 선생님과 마흔 살의 선생님은/ 서로 다른 이유와 시선으로/ 1980년 오월의 광주를 바라보신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역사를 가진 한 나라 사람이 이리 다를까?’(‘비분강개의 두 가지 이유’)



왼쪽부터 마미혜(16·풍문여고 1), 이유민(16·숙명여고 1).
왼쪽부터 마미혜(16·풍문여고 1), 이유민(16·숙명여고 1).
“우파와 좌파, 영남과 호남이라는 이분법이 민주화 운동으로 광주에서 죽어간 열사들의 희생과 그 정신을 이어가는 시민들의 노력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지…, 슬프고 분하여 비분강개한다”고 그는 썼다.

‘5·18’ 민중항쟁 30돌을 맞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숙명여고 앞 하굣길은 학생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했다. 그들에겐 이날도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고단한 일과가 반복된 하루였을 것이다. 그들이 배우는 국정 국사교과서에는 5·18에 대한 설명이 단 두 문장 나온다. ‘신군부세력은 계엄령 철폐와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며 시작한 5·18 민주화운동도 무장군인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비록 실패했지만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미혜는 이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5·18 30돌 행사를 찾았다. 그리고 30년 전 흑백사진 앞에서 역시나 한참 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5·18은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믿는 미혜의 꿈은 ‘황석영 같은 용기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해요. 그래서 5·18을 잊는 것 같아요. 고작 30년밖에 안 됐지만 10대와 20대는 그때의 광주와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아요.”

유민이의 비분강개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씩 듣게 되는 ‘빨갱이’라는 말에 당황한다. “당시 군부정권의 탄압을 정당화시키려고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에게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줬으면 해요.”

유민이는 의사도 되고 싶고, 진실을 밝히는 기자도 되고 싶다. 요즘 배우고 있는 ‘걸스힙합’ 댄스도 잘하고 싶지만 쉽게 오르지 않는 성적도 고민인 평범한 고교생이다. 그럴 때마다 유민이는 30년 전 거리에 나왔던 평범한 고교생들의 용기를 떠올린다. “5·18 그때 나도 광주에 있었다면 학생들처럼 거리로 나섰겠지만 선두에 서지는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유민이는 그들의 용기를 떠올리며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로 했다. “서양에서는 시민의 권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잖아요. 우리는 민주주의를 짧은 기간에 이룬 만큼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돼요.”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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