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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전 노병의 ‘따뜻한 5000원’

등록 2010-06-25 19:45

손창곤(80)씨가 25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그의 등 뒤로 대문에 걸린 은색 국가유공자 문패가 보인다.
손창곤(80)씨가 25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그의 등 뒤로 대문에 걸린 은색 국가유공자 문패가 보인다.
북한 어린이 영상 보고 뭉클…형편 어렵지만 매달 기부
제주서 강원까지 참혹·끔찍…우린 형제, 전쟁되풀이 안돼
경기도 이천 모가면의 손창곤(80)씨의 집 대문에 걸린 문패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국가유공자 손창곤’. 한국전쟁 60돌을 맞은 25일, 기자가 그를 만나러갔을 때 손씨는 막 텔레비전으로 ‘6·25전쟁 60주년 중앙기념식’을 보고 난 참이었다. 그는 59년 전 21살 젊은 군인으로 입대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표정에는 자부심과 회한이 교차해 스쳐갔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영장을 받았지. 결혼한 지 다섯 달 됐는데 경주에 새색시를 놔두고 포항으로 가서 입대했어. 색시를 데려갈 수도 없고 참….” 훈련을 마친 손씨는 당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던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에 배치됐다. 어느 여름밤, 손씨의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져 그는 피투성이가 됐다. 손씨는 3개월 동안 경기도 연천과 전남 여수의 병원 등을 전전했고, 몸 상태가 나아진 뒤 다시 전장에 투입됐다. 그는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휴전을 맞았다. “모두 만세를 불렀어. 북한군의 만세 소리도 들리던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휴전 이후 손씨는 큰 키와 체격 덕에 군 의장대에 뽑혔고, 36개월이라고 생각했던 군생활은 2년이나 더 이어졌다. 하지만 전역 후 생계는 막막했다. “사람들 많은 곳에 먹을 게 있겠지”라는 생각에 그는 고향에 있던 아내와 함께 빈손으로 상경했다. 1950년대 후반이었다. 서울역에서 짐꾼으로 15년, 다시 성북구에서 잡일로 14년을 보냈다.

2002년 경기도 이천에 자리잡은 손씨는 서울 아들 집에 있는 아내와 떨어져 혼자 산다. 그동안 몰랐던 국가유공자 신청을 해 매달 9만원을 받고, 아들이 가끔 주는 용돈으로 소박하게 지낸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그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박한 선행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지난 2월이었다. 동네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가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이 보여준 영상물을 보고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계속되는 내전과 가난에 지친 영상 속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에서, 60년 전 한국전쟁 때 헐벗고 굶주렸던 우리 아이들이 겹쳐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멀리 아프리카 아이들보다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에 매달 5천원씩 기부하기로 했다. 5천원이면 아이한테 영양빵 한 달치를 줄 수 있는 돈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어른들 싸움에 애들이 무슨 죄야. 눈물이 나더라고. 나도 국가에서 도움 받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나 됐으면 한 거지.”

그는 전기세·수도세는 자동이체를 하지만, 기아대책에 내는 성금만은 한 달에 한 번 머리 깎으러 외출할 때마다 꼬박꼬박 직접 입금한다. 손씨는 “어떤 사람들은 남의 돈을 뺏어서 살기도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웃었다.

전쟁 뒤 60여년이 지나도록 분단이 계속되는 현실에 대해 손씨는 “전쟁만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북 사람들도 형제잖아. 전쟁은 절대 안 돼. 어른 싸움에 아이들이 또 굶으라고?”


이천/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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