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자기 부모의 중혼 상태에 대해 취소 청구 소송을 낼 수 없도록 한 민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아버지의 중혼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낸 윤아무개(75·여)씨가 신청하고 서울가정법원이 제청한 민법의 중혼 취소 청구권자 자격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재판관 7(헌법불합치) 대 1(한정위헌) 대 1(반대)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고 1일 밝혔다. 현행 민법은 ‘당사자나 배우자, 부모·조부모(직계존속), 4촌 이내의 방계혈족 또는 검사’만 법률상 금지돼 있는 중혼관계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중혼 취소 청구권자에 중혼 당사자의 자녀(직계비속)는 포함돼 있지 않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재는 앞서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 규정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가부장적인 제도가 헌법적 혼인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해 왔다”며 “직계존속이나 종·형제자매, 조카 같은 4촌 이내 방계혈족은 중혼 취소권을 갖게 하면서, 상속권 등 법률적 이해관계가 더 큰 직계비속을 제외한 것은 불합리하며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는 위헌결정으로 법적 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해 “2011년 12월31일을 법 개정시한으로 두고 해당 조항을 잠정 적용할 것을 결정했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한편 김종대 재판관은 “직계비속이 부모의 중혼을 취소 청구할 수 있도록 헌법불합치가 아닌 한정위헌 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조대현 재판관은 “중혼은 당사자나 배우자에 대해서는 직접 법익 침해지만, 그밖의 사람에게는 법익 침해로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친족들의 취소 청구는 혼인관계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이므로 다른 친족들도 중혼의 취소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평안남도 출신인 윤씨의 아버지는 1933년 북한에서 결혼해 20년간 3남매를 낳았다. 그는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15살이던 윤씨만 데리고 남으로 내려왔으며, 59년 북에 두고 온 아내가 숨졌다고 신고한 뒤 남쪽에서 재혼했다. 윤씨는 87년 아버지가 숨진 뒤 재혼한 어머니와 상속 문제로 다툼이 일자 “아버지가 북에 살아 있는 어머니에 대해 허위로 사망신고를 하고 재혼한 것은 중혼이므로 무효”라며 소송을 냈고, 자녀의 중혼 취소 청구권을 제한한 민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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