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재단 복귀 저지와 상지대 지키기 긴급행동’ 회원들이 지난 6일 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비리로 물러난 김문기 전 이사장의 복귀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93년 부패혐의로 구속된 뒤 임시이사 체제로
학생·교직원·지역사회 온힘 ‘비약적 발전’ 이뤄
김 전이사장쪽 복귀임박…이사자격 논란 거세
학생·교직원·지역사회 온힘 ‘비약적 발전’ 이뤄
김 전이사장쪽 복귀임박…이사자격 논란 거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상지대 정이사 최종 선임을 위한 전체회의를 9일 연다. 부패사학의 상징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명문사학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는 상지대의 운명이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지경이다. 상지대 학생·교수·교직원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옛 비리재단의 복귀가 결정되면 학교는 끝”이라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가게 둘 순 없다”고 벼르고 있다.
■ 부패사학의 전형 상지대는 올해로 17년째 임시이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시작은 1993년 당시 재단 이사장이자 집권 민주자유당 국회의원이던 김문기씨가 비리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다.
김씨가 상지대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72년이다. 당시 문교부 감사결과 학교 시설이 기준에 못 미치는 등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김씨가 임시이사에 선임됐다. 유신체제를 떠받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던 김씨는 불과 2년만에 임시이사회를 통해 재단 이사장 자리에 오른다. 민관식 당시 문교부 장관과의 각별한 ‘인연’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 전 장관이 공화당의 서울 동대문갑 지구당 위원장 시절, 김씨는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김씨는 대학을 사실상 ‘사유화’했다. 이사장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이사회를 열지 않은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절대권력’도 끝은 있었다. 김영삼 정부 들어 공직자 재산공개 결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면서, 여당 현역 의원이던 김씨는 검찰의 사정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결국 김씨는 업무상 횡령·입시부정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1년6월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1995년 형기를 한 달여 앞두고 ‘8·15 특사’로 풀려났다.
■ 비리의 사슬을 끊고 김씨가 구속된 뒤 상지대 구성원들은 학교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교수와 교직원들은 월급의 일부를 떼어 학교발전기금을 모았고, 학계와 시민·지역 사회의 많은 인사들이 상지대 운영에 적극 참여했다.
이들이 일군 변화는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992년 144명에 불과하던 교수진은 2009년 364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엔 전국 사립대 가운데 교수 논문 등재 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36개 학과 1550명이던 입학정원은 45개 학과 2036명으로 늘었고, 재학생 등록률 100%라는 쉽지 않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전국 사립대 가운데 등록금은 최저 수준이지만, 옛 재단 시절 7.2%에 그쳤던 재학생 장학금 수혜율은 지난해 14.6%로 되레 2배가량 늘었다. 학교 예산도 150억원에서 702억원으로 급증했고, 건물도 11개동에서 30개동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학교 자산 총액도 306억1209만원에서 1898억5183만원으로 약 6배나 불었다. 말 그대로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상지대는 임시이사 체제 10년 만인 2004년 학교가 정상화했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판단에 따라 정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1995년 출소 이후 줄곧 ‘권토중래’를 노리던 김씨는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순 없다”며 소송을 냈고, 2007년 7월 대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줬다.
■ 김문기씨 이사 자격 논란 지난 4월 말 사분위는 김씨의 옛 재단 쪽에 9명의 정이사 가운데 5명의 추천권을 주는 결정을 내렸다. 2007년 7월 대법원 판결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따르자면, 김씨의 ‘종전이사’(임시이사 파견 직전 정이사) 자격을 두고도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1972년에 임시이사로 파견된 김씨도 1974년 임시이사회를 통해 재단이사장이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1993년 교육부 감사결과, 김씨가 15년의 재임기간(1978년~93년) 동안 이사회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해당 기간 동안의 임원 선임이 모두 취소된 바 있다. 상지대 부총장을 지낸 박병섭 교수(법대)는 “결국 김씨는 교육부에 의해 임원 선임이 취소된 기간(1978~93년)뿐 아니라, 스스로를 정이사로 선임한 1974~77년 기간까지 무려 20년 간 ‘무자격 이사’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설령 김씨가 ‘종전이사’ 자격이 있다 해도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사분위가 작성한 ‘학교법인 정상화 추진 관련 쟁점 검토’ 문건을 보면, “사회상규와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춰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경우”에는 종전이사의 정이사 추천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종전이사의 비리 정도가 현저해 도저히 사학 운영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사정이 악화된 경우”가 대표적 사례로 나와 있다. 유재천 상지대 총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설립자도 아니고 종전이사 자격도 없는 김씨가 재단을 장악한다면, 학교는 극단적인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은 등록·수업 거부로 버틸 것이고, 총장인 나를 포함해 교수들도 지금까지 잘 키워온 민주대학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상지대 사태 일지
■ 김문기씨 이사 자격 논란 지난 4월 말 사분위는 김씨의 옛 재단 쪽에 9명의 정이사 가운데 5명의 추천권을 주는 결정을 내렸다. 2007년 7월 대법원 판결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따르자면, 김씨의 ‘종전이사’(임시이사 파견 직전 정이사) 자격을 두고도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1972년에 임시이사로 파견된 김씨도 1974년 임시이사회를 통해 재단이사장이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1993년 교육부 감사결과, 김씨가 15년의 재임기간(1978년~93년) 동안 이사회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해당 기간 동안의 임원 선임이 모두 취소된 바 있다. 상지대 부총장을 지낸 박병섭 교수(법대)는 “결국 김씨는 교육부에 의해 임원 선임이 취소된 기간(1978~93년)뿐 아니라, 스스로를 정이사로 선임한 1974~77년 기간까지 무려 20년 간 ‘무자격 이사’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설령 김씨가 ‘종전이사’ 자격이 있다 해도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사분위가 작성한 ‘학교법인 정상화 추진 관련 쟁점 검토’ 문건을 보면, “사회상규와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춰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경우”에는 종전이사의 정이사 추천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종전이사의 비리 정도가 현저해 도저히 사학 운영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사정이 악화된 경우”가 대표적 사례로 나와 있다. 유재천 상지대 총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설립자도 아니고 종전이사 자격도 없는 김씨가 재단을 장악한다면, 학교는 극단적인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은 등록·수업 거부로 버틸 것이고, 총장인 나를 포함해 교수들도 지금까지 잘 키워온 민주대학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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