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서초경찰서 집회신고 접수 장소 앞에서 현대기아차 쪽 아르바이트 학생 등이 음악을 듣거나 만화책을 보며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맨 뒤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이가 동희오토 조합원 박성영씨다.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제공
회사쪽 용역·알바 서초경찰서에서 24시간 교대 접수
“한사람당 일당 12만원…집회도 돈으로 사나” 비판
“한사람당 일당 12만원…집회도 돈으로 사나” 비판
매일 밤 자정이 되면 서울 서초경찰서 교통조사계 앞 집회신고 접수 대기 장소에선 기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10여명의 사람들이 집회신고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맨 앞사람이 집회신고서를 접수한 뒤 다시 뒤로 가서 줄을 선다. 0시가 되어 날이 바뀌면 집회신고가 가능한 날이 하루 늘어나기 때문에 자정께가 이들에겐 가장 중요한 시각이다. 이 줄은 24시간 끊기지 않는다. 화장실에 갈 경우 차에서 대기하던 다른 사람이 대신 줄을 선다.
쉴새 없이 집회신고를 하는 이들은 누굴까? 현대기아자동차의 용역 직원과 아르바이트 학생들이다. 이들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을 ‘집회장소’로 선점하기 위해 토·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교통질서 결의대회’를 신고한다. 장소를 선점하면 다른 집회가 허가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24시간 교대로 쳇바퀴 돌듯 하는 것이다.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해고자들은 지난달 12일부터 “현대기아차가 직접 하청업체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라”고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번번히 이런 장소 선점에 막혀 지금껏 딱 두 번 집회신고에 성공했다. 박태수(31) 조합원은 “집회신고를 하려면 적어도 8~9일, 시간으로 따져 200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5~10명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데 한 사람당 일당이 12만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집회도 돈으로 사는 것이고, 사회적 약자에겐 집회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초서 관할 지역에는 삼성과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이 몰려 있어 집회장소를 선점하려는 회사와 외부단체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서초서는 집회신고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비를 막으려고 올해 들어 집회신고 장소를 경찰서 별관 교통조사계로 옮기고, 줄을 설 수 있는 가드레일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했다. 동희오토의 심인호(34) 조합원은 “몸싸움은 없어졌는데 회사 쪽 인원이 많아 사실상 집회신고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집회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두 개 이상의 집회가 신고됐더라도 집회의 성격이나 진행방식에 따라 모두 열릴 수 있는데도, 나중에 신고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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