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헌쪽 “군 특수성 인정을”
위헌쪽 “정신전력과 무관”
위헌쪽 “정신전력과 무관”
장병들이 군대 밖에서는 읽어도 되지만 영내에서 읽거나 소지하면 정신전력을 해치고 국가의 안전보장까지 위협한다는 <지상의 숟가락 하나>, <대한민국사>, <나쁜 사마리아인들>, <삼성공화국의 게릴라들> 등은 ‘불온’의 딱지를 뗄 수 있을까.
국방부가 시중 서점에서 팔리는 책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이 알 권리와 사상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군법무관들이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곧 나올 전망이다. 지난해 5월 공개변론에 이어 1년여만인 지난 4월 첫 평의를 연 재판관들은 합헌과 위헌 의견으로 갈려 팽팽히 맞서오다 최근 논의를 마무리 지은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 군 특수성 인정해야 헌재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합헌쪽에 선 재판관들은 국방부 쪽 논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군인은 일반 시민과 달리 국방이나 국가안보를 위해 헌법상 자유와 권리를 어느 정도 제한당할 수 있다는, 이른바 ‘특별권력관계’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근거로 ‘불온서적 지정은 국가 안전보장과 장병 정신전력 유지를 위한 것’이라면서도 ‘해당 책들의 영내 반입만 금지할 뿐 영외에서 읽는 것은 문제 삼지 않는다’는 모순된 주장을 펴왔다. 일부 재판관들도 ‘군대에서는 신체의 자유나 통신의 자유 등이 제한되는데 책 읽는 자유도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굳이 군대 안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면 군대라는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전해졌다.
■ 정신전력과 상관없다 반면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책의 내용과 장병들의 정신전력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헌재는 국방부가 △북한찬양(11권) △반정부·반미(10권) △반자본주의(2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23권의 책을 재판관들을 보좌하는 헌법연구관들에게 나눠주고 책 내용을 분석하도록 했다. 실제 학계나 출판업계 등에선 국방부의 불온서적 분류가 기초적인 인문·사회과학적 지식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한편, 재판관들 대부분은 합헌·위헌 의견과 상관없이 국방부의 자의적인 불온서적 지정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내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 ‘천안함 사건’ 변수? 2008년 7월 불온서적을 분류·지정한 국방부는 그해 10월 현역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내자 지난해 3월 ‘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이들에게 파면 등 가장 강력한 징계를 했다. 이에 군법무관들이 국장부 장관 등을 상대로 낸 징계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김종필)는 “헌법소원을 행사할 권리는 법률에 의해 보장되지만 국가의 안전보장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며 사실상 국방부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때로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헌재는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심판에서는 이를 확장하는 쪽으로 결정을 해왔다. 그러나 헌법학계 일부에서는 헌재 결정에 지난 3월26일 터진 천안함 사건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군 복무기간 연장, 군 가산점제 부활 등이 거론되는 상황 자체가 재판관들의 보수적 판단을 자극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헌재에 낸 의견서에서 “비주류 혹은 익숙하지 않은 이념이나 역사 등을 다룬 책을 읽기를 원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보호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해 극우 성향 잡지인 <한국논단>을 ‘안보전문지’라며 장병 정신교육용으로 구독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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