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의혹’ 검사 수사 결과
직무무관 등 이유 ‘무혐의’…“사건 진원” 발표와 모순
한승철 전검사장 등 4명 기소…‘원칙없는 법적용’ 지적
한승철 전검사장 등 4명 기소…‘원칙없는 법적용’ 지적
‘스폰서 검사·수사관’ 의혹을 수사해 온 민경식 특별검사팀의 수사결과 발표문에는 박기준(52) 전 부산지방검찰청장(검사장)이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이자 진원지”라고 나온다. 그러나 특검팀은 28일 이 ‘진원지’를 뺀 채 한승철(47)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검사장)을 뇌물수수와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한다고 밝혔다. 또 현직에 있는 김아무개(46)·정아무개(49) 부장검사를 뇌물수수 혐의로, 이아무개(35) 검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각각 기소하기로 했다. 박 전 검사장의 소개로 ‘스폰서’인 전직 건설업체 대표 정아무개(51)씨를 알게 된 사람들만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들에게 뇌물을 건네고 ‘오염’시킨 정씨는 아예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서, 박 전 검사장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직무 관련성이 없거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무혐의·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직무유기 혐의는 “진정사건을 은닉하지 않고 ‘정식으로 접수해 처리하라’고 지시했으며, 이를 상급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더라도 죄를 물을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반면 한 전 검사장은 지난해 3월 정씨에게서 140만원어치 식사·향응과 함께 현금 1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적용했다. 또 대검 감찰부장으로 있던 지난 1월 자신의 이름과 비위 사실이 적힌 정씨의 고소장과 진정서가 들어오자, 이를 검찰총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부산지검으로 내려보내 처리하도록 한 혐의도 사고 있다.
특검팀은 김아무개·정아무개 부장검사의 경우 지난해 3월 정씨한테서 향응·접대를 받은 뒤 수사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사자가 억울해하니 수사기록을 잘 살펴보라”는 취지의 말을 해 정씨 사건 처리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김아무개 부장은 지난 6월 민·검 합동 진상규명위에서 성접대 사실이 인정됐지만, 특검팀은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성매매를 한 여성도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특검팀은 “액수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향응·접대를 받고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쳤다면 형사처벌했다”고 처벌 기준을 설명했다. 지난 6월 민·검 합동 진상규명위원회는 박 전 검사장 등 현직 검사 6명이 정씨에게 접대받은 사실과 정씨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대신 직무태만으로 징계에 회부하는 결정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특검이 박 전 검사장을 형사처벌 대상에서 뺀 것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 적용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한 두 전직 검사장이 모두 정씨 진정사건을 상급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는데도 특검은 한 전 검사장에게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다. 또 검사들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면서 정작 뇌물을 건넨 정씨는 입건 대상에서 제외했다. ‘플리바게닝’이란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반면 검찰 수사관들에게 뇌물을 준 사업가 박아무개씨는 이미 수사과정에서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지난 4월 문화방송 <피디(PD)수첩>의 방송으로 불거진 ‘스폰서 검사’ 의혹 특검은 19장 분량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수사결과 발표문만을 남긴 채 마침표를 찍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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