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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장애인도 하고 싶다, 살고 싶다

등록 2010-10-01 14:17수정 2010-10-01 15:36

장애인도 하고 싶다, 살고 싶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차현실
장애인도 하고 싶다, 살고 싶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차현실
[표지이야기]

지적장애·뇌성마비·척수손상 224명 대상 심층조사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말한다…

‘만족군’은 10.3%에 그친 장애인의 성생활 실태 A부터 Z까지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문정희, <응>)

성이 그렇다. 제일 평화롭고 뜨겁게 숨 쉬자는 것이리라. 하지만 장애인은 묻지도 답하지도 못한다. 이들의 성(적 욕구와 권리)은 부정되거나 금기시될 뿐이다. 장애인의 숨 쉴 권리를 부정하거나 쉬쉬하는 것은 누구이고, 숨 쉴 권리는 어떻게 박탈되는가?

답을 찾기 위해 <한겨레21>은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성적 소외가 큰 지적장애· 뇌성마비·척수손상 장애 성인 2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작은 표본집단의 평균치일 뿐이다. 장애 정도, 결혼 여부, 성별, 연령 등에 따라 성은 극간에서 생동한다. 통계로 다 들춰낼 수 없는 장애계의 절망은 그래서 넘친다. 편집자

표1. 뇌성마비 미혼 그룹의 성행동 실태
표1. 뇌성마비 미혼 그룹의 성행동 실태

받자마자, 전화기는 통곡하고 있었다. “아들만 결혼시켜주면 뭐든 합니다. 죽는 날까지 뼈가 으스러지도록 며느리를 업고 다닐게요.” 최부암 상담소장(한국장애인문화협회)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아들이 “결혼도 할 수 없는데, 여자랑 한 번만 자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얘기, 그래서 결국 아들의 자위를 어머니 제 손으로 해주기 시작했다는 얘기…. 여인은 결국 오열했다. 대화가 30여 분 끊겼다. “그런데 아들이 점점 더 긴 거, 점점 더 자극적인 걸 요구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억눌림 끝에 성욕 자각 못하기도


석 달에 걸쳐 5차례 전화 상담이 이어졌다. 아들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장애 아들 때문에 외도를 한 남편과 이혼한 여인에게 자식은 전부였던 모양이다.” 차마 지면에 담을 수 없는 사정까지, 25년 넘게 장애인의 고충 상담을 도왔던 최 소장에게도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여인은 “이런 얘길 친구한테 하겠어요, 친척한테 하겠어요? 이렇게라도 고민을 얘기하니 (속이) 뚫리는 것 같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더는 상담소를 찾지 않았다. 2008년 여름이었다.

당시 37살이던 아들의 심정을 가늠하기 어렵다. 성욕을 저주한다 하여 사라질 리 없고, 장애를 원망한대서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그 아들만 그러할까? <한겨레21>이 설문조사로 파악한 장애인들의 성생활 실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표1 참조).

일단 ‘본인의 성생활(성관계 횟수 및 만족도 등)은 충분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살필 필요가 있다. 전체 결론과 함께 앞으로 고려해야 할 장애·성별·결혼 여부 등에 따른 특성을 보여준다.

전체 224명 가운데 ‘매우 충분하다’고 한 이는 단 5명(2.2%)이었다. 기혼자 63명의 답이 포함된 수치다. ‘충분한 편’은 18명이다. 함께 ‘만족군’으로 묶으면 전체의 10.3%다. 반면 37.5%(84명)가 ‘매우 부족하다’거나 ‘부족한 편’이라고 말한다. ‘보통’이 48명으로 최다였고, 46명이 ‘모르겠다’고 했다. 나머지 23명은 답변을 거부했다. 10명 가운데 9명꼴로 ‘당신의 성생활은 충분한가’란 물음에 주저하거나 고개를 저은 셈이다.

장애 유형별로 보면, 척수손상 장애인의 63.8%(44명)가, 뇌성마비는 33.3%(23명)가 불만(매우 부족 또는 부족한 편)을 토로했다. 지적장애인은 24.6%(17명)였다. 척수손상 쪽에선 ‘매우 부족하다’(37.7%·26명)는 답변이 두드러졌고, 뇌성마비는 ‘보통’(34.8%·24명), 지적장애에선 ‘모르겠다’(47.6%·30명)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척수손상·뇌성마비 장애인(응답 135명)의 경우 기혼·미혼을 따로 조사했는데, 미혼 응답자는 84명 가운데 55.1%(43명)가 불만을 드러냈다. 기혼·미혼 전체의 불만족군(49.6%)보다 비율이 훨씬 높다.

정리하자면 척수손상-뇌성마비-지적장애 순, 미혼남-기혼남-기혼녀-미혼녀 순으로 만족도가 낮다. 하지만 그 역순으로 성 생활의 여건이 좋다는 말은 결코 못 된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했던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지적장애나 뇌성마비의 경우, 주변에서 억눌리거나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어서 (욕구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말한다. 지적장애인은 세 장애 유형 가운데 불만족군의 비율이 가장 적지만, 아래에서 살펴보듯, 성폭력 노출이 가장 심한 그룹이기도 하다.

표2. 지적장애인의 성적 권리 침해 경험 / 표3. 성적 권리 신장을 위해 필요한 조처
표2. 지적장애인의 성적 권리 침해 경험 / 표3. 성적 권리 신장을 위해 필요한 조처

실제 성생활 만족도는 조사보다 처참

최근의 성행동, 즉 가장 근래에 성욕을 해소한 방법(복수응답)에서도 같은 맥락이 확인된다. 척수손상의 경우 ‘연인·배우자와 성관계(28명)-포르노 사이트·잡지 등 이용(18명)-없음(10명)’을 차례로 꼽았다. 반면 뇌성마비는 ‘연인·배우자와 성 관계(25)-자위(12)-없음(10)’ 순이다. 지적장애는 ‘없음(13)-포르노 사이트·잡지 등 이용(13)-부모·선생님 등과 고민 상담(11)’으로 이어졌다. 제 성욕을 점수(10점 만점)로 매겨달라는 질문에도 지적장애 쪽은 평균 5.16점으로 최하였다. 전체 평균은 5.66점이다.

척수손상 장애인의 성행동은 상대적으로 왕성하다는 이야기인가? 비장애와 견주면 어떤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최근의 성행동을 묻는 질문에 무응답만 전체 53명(23.7%)이었다. 상당한 비중이다. 전문가들은 △내밀한 성 관련 질문이란 점 △경험하지 않은 데 대한 소극성 등으로 ‘무응답’을 해석한다. 설문 답변을 톺아봐도, 본인과 무관한 질문일 경우 대개 답변을 건너뛰는 경향을 보였다. 성경험이 없을 때 성욕 점수를 ‘0점’으로 매기거나 비워둔 경우 등이다. 실제 상황은 훨씬 더 부정적일 공산이 크다.

앞서 ‘성생활은 충분한가’란 질문도 마찬가지다. ‘모르겠다’와 무응답이 전체의 28.1%다. 게다 다양한 ‘보통’들이 존재한다.

♀ 보통 1: 40살. 뇌성마비. 미혼. 교제 경험 한 번도 없음. 성욕 10점. 연애 욕구 5점. 연애 욕구 불만 10점. 최근 한 달 사이 성관계 0회. “정서적·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누기 대단히 어려움”, “장애 때문에 성욕 자체를 억누름”, 최근 성행동 “없음”.

♀ 보통 2: 30살. 2005년 척수손상 발생. 2009년 결혼(배우자 비장애인). 성욕 5점. 최근 한 달 사이 성관계 1~2회. “장애 때문에 배우자가 성관계를 거부한 적이 있음”, 최근 성행동 “무응답”??.

♂ 보통 3: 26살. 뇌성마비. 미혼. 교제 중(상대는 뇌성마비). 과거 1회 연애 경험 있음. 성욕 8점. 성적 욕구 불만 5점. 최근 한 달 사이 성관계 1~2회. “성욕이 해소되지 않아 성매매를 이용한 적이 있음”, 최근 성행동 “연인과 성관계”.

최근 성행동의 시기도 함께 물었는데, 한 달 이내가 대다수였으나 1~7년까지 산개했고 그래서 아득했다. 이들의 나이가 궁금할 것이다. 20대가 53명, 30대 79명, 40대 65명, 50대 이상 16명, 미상 11명이다.

꼭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이번 설문 응답자들은 같은 장애를 지닌 이들에 비해 사회활동이 대단히 양호한 편이다. 장애인 전반의 성적 소외, 성 만족도, 성행동 등 실태는 통계치보다 상상 이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당장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구근호 소장(뇌성마비)은 “장애인의 사회활동 폭이 늘면서 조금씩 많아지고는 있지만, 연애를 하는 장애인은 여전히 20~30명 중 한 명 정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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