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우대 ‘이사회 결의’ 무효…‘총회의결’은 적법
종중의 재산을 분배할 때 다른 합리적 기준없이 남녀 성별에 따라서만 차별을 두는 것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5년 “여성도 종중원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재산 분배에서도 남녀에게 비합리적인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우봉 김씨 계동공파 종중은 2005년 6월 종중 소유의 땅이 에스에이치(SH) 공사에 수용되면서 137억여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종중은 총회 의결을 통해 독립 세대주한테 50억원, 20살 이상 비세대주와 20살 이상 여성 종중원에게 각각 40억원을 나눠주기로 했다. 구체적인 분배 방식을 위임받은 이사회는 20살 이상 남성 세대주한테는 3800만원을, 20살 이상 여성 종중원과 비세대주 등한테는 1500만원씩을 각각 지급했다. 이에 김아무개(61)씨 등 여성 종중원 27명은 “합리적인 이유없이 결혼한 여자 종중원을 차별한 것”이라며 총회 결의 무효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원심에서는 “조상의 묘를 관리하고 제사 등을 주관하는 데 있어 성과 본을 같이 하는 종중원 세대와 타 종중원의 후손을 낳게 된 여성 종중원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다”며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현저히 불공정해 무효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 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여성 종중원들이 낸 총회 결의 무효 청구소송에서 “단순히 남녀 성별의 구분에 따라 차이를 두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와 남녀평등의 실현을 요구하는 우리 법질서에 맞지 않으므로 정당성과 합리성이 없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구체적인 분배를 위임받은 이사회가 1인 세대주라도 여성 종중원 등 비세대주 종중원에 비해 더 많은 분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성별에 따라 차별에 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여성 종중원의 청구 내용에 대해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총회 의결 자체가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며 “김씨 등이 여성 종중원 또는 20살 이상 비세대주한테 40억원, 독립 세대주한테는 50억원을 나눠주기로 한 총회 결의에 대해서만 무효를 구하고 있으므로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김씨 등은 이사회 결의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소송을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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