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사전통지 안 해 사생활 침해”
2008년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그가 주고받은 7년치 전자우편을 통째로 압수했다. 주 후보의 이메일 계정이 개설돼 있는 한 포털업체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서버에 보관돼 있던 주 후보의 모든 전자우편을 검찰에 넘겼다. 심지어 지운편지함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검찰도 포털도 당사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제121·122조)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할 때 당사자에게 ‘사전통지’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긴급하거나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사전통지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을 집행하기 직전, 현장에서 영장을 제시하는 것으로 사전통지를 하게 마련이다.
반면 송수신이 끝난 전자우편의 압수수색은 사전통지 절차 없이 이뤄진다. 검찰이 전기통신사업자(포털업체 등)에게서 전자우편을 받아가면서도 이를 수사 대상자에게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야 ‘수사가 끝난 뒤 30일 안에 당사자에게 전자우편 압수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조항이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에 신설됐다.
이처럼 전자우편 압수를 사전에 통지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추진한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10일 “수사기관이 사전통지 절차를 지키지 않아 방어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12일 관련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자우편을 압수당하지만 이를 모르거나 한참이 지난 뒤에야 통지가 된다”며 “수사 밀행성을 위해 사전통지가 어렵다면 압수수색을 종료한 직후라도 통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들도 이런 수사관행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모르고 영장을 발부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에 계류중인 6건의 형소법 개정안에 대해 “전자우편 압수 시 사전통지를 하고, 그게 어렵다면 가장 이른 시간 안에 피의자 등에게 압수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미국은 범죄의 정도나 긴급성 등에 따라 통지 시기 등을 나누고 있다”며 “지난해 신설된 통비법 조항으로 통지 시기는 법률적 결론이 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