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 ‘이건희 형사재판 기록 요청’ 묵살
문서송부 이유 10개월 공전…1만쪽 중 48쪽만 전달 받아
문서송부 이유 10개월 공전…1만쪽 중 48쪽만 전달 받아
이건희(68)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제일모직 주주들의 주주대표소송이 문서 송부를 이유로 10개월 남짓 공전된 끝에 15일 변론이 재개됐다. 주주들은 재판부를 통해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의 문서 송부를 대법원과 서울중앙지검 등에 각각 요청했지만, 48쪽의 사건 기록만 전달받은 채 다시 소송에 임하게 됐다.
제일모직 주주들은 ‘1996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발행할 때, 제일모직이 전환사채의 인수를 포기해 회사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2006년 제일모직 경영진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에 대해 법원이 혐의의 대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가운데, 삼성 일가의 불법 경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마지막 소송으로 꼽히고 있다.
주주들은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의 형사사건 기록을 제일모직의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로 봤다. 이에 이 소송을 맡고 있는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주주들의 신청에 따라 지난 3월 서울중앙지검에 관련 수사기록의 송부를 요청했지만, 검찰은 기록의 열람·등사를 거부했다.
앞서 김천지원은 2007년에도 당시 사건을 맡고 있던 대법원에 사건 기록의 송부를 요구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김천지원은 또 2009년에는 사건을 파기 환송받은 서울고법에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회장 쪽이 ‘공개해도 괜찮다’고 의견을 밝힌 48쪽만 김천지원 쪽에 제공했다. 전체 사건 기록은 1만쪽이 넘는 규모다.
한편 기록물을 둘러싸고 재판이 거듭 연기된 사이, 김천지원은 재판의 무의미한 장기화를 막으려고 원고와 피고 양쪽에 조정을 권고했지만, 이 회장 쪽이 “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완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결렬됐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영희 변호사는 “이 회장의 형사사건 기록이 있다면 제일모직의 손해를 좀더 쉽게 입증할 수 있을 텐데, 법원과 검찰의 비협조로 기록 자체를 구할 수 없게 돼 아쉽다”며 “그러나 앞서 진행된 재판 등을 통해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 저가 발행에 따른 손해액 산정 등 법리가 드러난 만큼, 손해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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