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독립운동가 60여명 유죄 선고한 판사
“법령 따랐을 뿐 반민족행위자 아니다” 판결
“역사 정의 외면…제식구 감싸기” 비판 일어
“법령 따랐을 뿐 반민족행위자 아니다” 판결
“역사 정의 외면…제식구 감싸기” 비판 일어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에게 잇따라 실형을 선고한 판사를 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판사는 당시 적용 법령에 따라 판단할 뿐”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역사적 정의를 외면한 직역 면피성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김종필)는 18일 일제 강점기인 1920년부터 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가 수십명에게 유죄를 선고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유영(1950년 사망·당시 68살)의 손자가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친일인명사전> 등을 보면, 유 판사는 일제 강점 중반기의 대표적 무장독립투쟁 단체인 의열단 사건 관련자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독립운동가 60여명에게 유죄판결을 했다. 그는 또 22년 동안 조선총독부 소속 판사로 ‘봉직’한 공로를 평가받아 1942년 일본 정부에서 훈장(훈4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유 판사가 유죄를 인정한 피고인 가운데 25명은 나중에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결정됐다.
특히 유 판사는 1924년 검거된 의열단 사건 관련자 이수택의 판결문에서 “이씨는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길림성에 가서 의열단을 조직했고, 조선독립운동을 실현하기 위해 폭발물·총기로 조선총독부의 중요한 관료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파괴할 것을 모의했다”며 “이는 다수가 공동으로 안녕·질서를 방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당시 이수택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수택은 복역 후 심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숨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 판사의 이런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판사는 검사가 공소제기한 적용 법령과 공소 사실을 기초로 유무죄 여부와 형량을 결정하는 역할만을 한다”며 “판사가 항일운동에 관련된 사안에 대한 재판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을 탄압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에 넘어온 사건을 단순 판결하는 기능적 역할만 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어 “유 판사가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도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판 결과 때문에 받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판결을 두고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당시 법령에 따른 판결이 정당하다는 셈인데, 당시 법은 대한민국의 법이 아닌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법이었다”며 “이번 판결은 최소한의 ‘역사적 정의’를 잊고 자구 해석에 매몰된 것으로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헌환 아주대 교수(헌법학)는 “우리 사법부는 과거 독재정치에 협력했던 역사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데, 이번 판결 역시 그런 인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법부는 지난해 사법부 60년사를 정리한 <역사 속의 사법부>라는 책자를 펴내면서도 법원의 과오에 대한 언급은 생략해 ‘과거 청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탄압에 적극 앞장설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사법부의 소극적 지위에 따라 이런 요건이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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