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없는 육군특무대 수사”…간첩혐의 벗을 듯
‘진보당 조봉암 사건’에 대한 재심 재판이 사형 집행 51년 만에 이뤄지게 됐다. 재심을 맡게 될 대법원 스스로가 ‘당시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육군특무대가 수사를 했다’는 명백한 위법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조봉암(1899~1959) 진보당 당수는 반세기 만에 자신에게 들씌워졌던 간첩 혐의를 벗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1959년 2월27일 조봉암에 대한 유죄 부분인 간첩죄·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을 재심하기로 결정했다. 전원합의체는 “당시 법률에 의하면 (군 수사기관인) 육군특무대는 민간인을 수사할 수 없는데도 조봉암과 양이섭을 간첩 혐의로 입건해 피의자로 신문했다”며 “이는 법률 위반일 뿐만 아니라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재심 개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사실이 증명되므로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조봉암은 사형이 선고되자 ‘육군특무대 수사관들이 간첩 혐의 등을 인정한 공동피고인 양이섭을 불법감금하고 약물을 투입하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심청구가 기각된 바로 다음날 조봉암은 사형이 집행됐다.
지난 2007년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봉암 사건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구제,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처를 권고했다. 이듬해 8월 조봉암의 유족들은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수사권이 없는 육군특무대가 수사를 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판단하는 데 무려 2년 넘게 끌었다. 지난 5월 대검찰청은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꼽히는 조봉암 사건에 대해 “뚜렷한 증거 없이 과거 판결을 뒤집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재심 개시를 반대하는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수사기록이 워낙 오래됐고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많아 이를 옮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 안팎에서는 일부 대법관들이 조봉암의 간첩 혐의를 주장한 탓에 재심 개시가 늦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주요 시국사건에서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과거의 결정을 뒤집는 것은 이례적이다. 대법원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도 1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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