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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평화 기도하며 연평초교 쓰레기 치워요”

등록 2010-12-09 20:07수정 2010-12-10 08:41

안동석씨
안동석씨
홀로 자원봉사하는 안동석씨
소방대원·취재진 임시 거처
화장실 청소에 분리수거 등
“기념사진 1장이면 만족해요”

매서운 바람이 목덜미와 소매 틈을 파고들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쓰레기 포대를 뒤집자 먹다 남은 즉석밥이며 컵라면 용기, 음료수 병들이 쏟아졌다. 구겨진 휴지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추위를 피하려 옷 위에 덧입은 노란 비옷도 칼바람에 파르르 떨었다.

지난 8일 오전 연평초등학교 한구석에서 자원봉사자 안동석(53·사진·고양시 행신동)씨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었다. 그는 유리병·플라스틱·스티로폼·종이류들을 따로 나눠 다시 다른 포대에 담았다. 분류해야 할 포대가 40여개, 분류한 포대가 40여개였다. 처리하기 힘든 것들은 ‘소각용’이라고 적어뒀다. 그나마 추운 날씨 탓에 음식 쓰레기가 썩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주인 잃은 개와 고양이들이 음식찌꺼기 사이를 어슬렁거렸다. 안씨는 먹다 남은 음식을 모아 그들을 위한 밥상을 차렸다.

학생들이 모두 인천으로 떠난 연평초교는 이제 소방대원들과 기자들의 임시거처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쓰레기 처리와 교실·화장실 청소가 안씨의 주요 일과다. 그가 연평도에 들어온 지난 2일에는 인천 자원봉사센터 소속 3명이 함께 있었지만, 며칠 전 떠나고 지금은 혼자다.

“이산가족 만남이나 대북 쌀 지원 등 미흡하나마 이제 남북관계가 좀 풀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연평도에 포탄이 떡 떨어지는 거예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나 평화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연평도에 왔습니다.”

2학년 1반 교실이 안씨의 숙소다. 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이 넓은 교실을 혼자 차지해 잠을 잘 수 있으니 참으로 영광”이란다. 교실 한쪽에 담요를 깔고 잠을 청하면서, 밤이나 새벽이면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께 엽서를 쓴다.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남북간에 서로 미워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께서 이 나라에 평화가 오도록 기도해주세요.” 이렇게 쓴 엽서가 모두 4통이다. ‘기도’라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를 묻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그도 일찍부터 성당을 다녔다고 했다.

안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 화장실 청소부터 한다. 세정제로 변기와 바닥을 쓱쓱 닦고 휴지통을 치운다. 다시 초등생이 된 기분이다. 청소가 끝나면 즉석밥을 데워 혼자 아침식사를 한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연기자 생활을 했다는 그는 아직 독신이다. 자원봉사가 무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원봉사한 기념으로 면사무소 공무원·경찰·소방대원·기자들과 단체 사진이나 한장 찍었으면 좋겠다”며 그는 사람 좋게 웃었다.

연평도/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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