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긴급조치 제1호가 내려지던 당시를 묘사한 김지하 시인의 ‘1974년 1월’이라는 시다. 긴급조치란 제4공화국 헌법(유신헌법)에 규정돼 있던, 헌법적 효력을 지닌 대통령의 특별조치를 말한다.
긴급조치 제1호는 유신헌법을 반대·비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이를 위반한 사람은 법관의 영장 없이도 체포·구속이 가능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초헌법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이런 내용을 담은 긴급조치 제1호 자체를 비방해도 처벌했다. 이 때문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긴급조치 제1호 위반 사건의 첫번째 피고인은 개헌청원서명운동을 주도했던 고 장준하 선생과 백기완 선생이었다. 김지하 시인도 그해 긴급조치 제1호와 4호 등을 위반했다며 구속기소돼 7월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 재심 어떻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6일 긴급조치 제1호는 위헌이라고 판단함에 따라 당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던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 등 관련 사건 처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를 보면, 70년대 긴급조치(제1·4·7·9호)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은 1140명에 이른다. 여기에 예비검속 차원에서 불법연행돼 피해를 본 사례까지 더하면 수천 건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해자들 중엔 반공법 등의 다른 혐의로도 불법수사를 받았다며 재심 신청을 해놓은 사람이 많다. 따라서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만으로 피해자들의 재심 소송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긴 어렵다. 이번 판결의 효력은 재심 소송을 낸 개개인들에게만 해당된다. 반면 형사소송법에 따른 재심 사유를 충족시키지 못한 긴급조치 위반 사건도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성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헌재가 긴급조치에 위헌 결정을 하면 대법원 선고와 달리, 소송을 낸 사람은 물론 소송을 내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법적 효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헌재에는 긴급조치와 관련해 3건의 헌법소원이 들어가 있다.
■ 대법원-헌재 신경전? 헌법은,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헌재에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법률보다 아래인 명령·규칙 등의 위헌성 여부는 대법원에서 판단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를 적극 해석해 이날 판결문에서 ‘긴급조치의 위헌심판기관’이라는 항목을 별도로 두어 설명했다. “긴급조치는 국회의 입법권 행사를 전혀 거치지 않았으므로, 헌재의 위헌심판대상이 되는 ‘법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 심사권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속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현재 대법원과 헌재는 ‘최고 사법기관’이라는 위상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헌법학계의 한 인사가 이날 판결을 두고 “최근 대법원과 헌재 사이의 다툼 과정에서 나온 판결로 보인다”고 설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헌재 쪽은 내심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대법원에서 판결 주문에 위헌성 여부를 명확하게 담지도 않았”으면서,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판단을 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대법원의 판결은 피해구제 측면에서 칭찬할 만하다. 헌재가 서둘러 이 사건을 처리했어야 옳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이 헌재의 권한을 침해해 법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긴급조치는 법률적 효력이 있어 위헌법률심판이 가능하다”며 “지금 헌법에도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데 이런 명령은 대법원보다는 헌재가 위헌성을 판단하는 게 옳다”고 평가했다.
노현웅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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