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1호는 위헌’ 대법 판결 안팎
“통렬한 반성없다” 비판도
“통렬한 반성없다” 비판도
“박정희 유신 시절 대법원이 했던 판결들의 ‘결자해지’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
17일 대법원의 한 간부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를 ‘위헌’으로 판단한 전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선고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긴급조치는 1970년대 폭압적 유신독재의 상징이었고, 사법부는 고분고분한 ‘유죄 판결’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협조’했다.
74년 1월8일 선포된 긴급조치 제1호의 첫 위반자는 ‘헌법개정 백만명 서명운동’을 벌이던 고 장준하 선생과 백기완 선생이었다. 이들은 “개헌이란 개자만 말해도 잡혀가게 되어 있으니 이런 놈의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며 유신헌법을 비판한 죄로 같은 달 15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열흘 뒤 기소가 이뤄졌고, 불과 엿새 만인 31일 징역 15년형이 구형됐다. 바로 다음날 비상보통군법회의는 이들에게 징역 15년씩을 선고했다. 당시 이들의 변호를 맡았던 한승헌 변호사는 “대한민국 정찰제는 백화점의 상관행이 아닌 군법회의 판결에서 최초로 확립되었다”며 ‘정찰제 판결’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대법원은 그해 8월 이들의 상고를 기각해 형을 확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판결문에서 “유신헌법은 긴급조치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는데, 대법원도 유신헌법 아래에서는 그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없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고 적시한 뒤, “(하지만) 긴급조치는 현행 헌법뿐만 아니라 유신헌법 아래에서도 위헌이었다”고 했다. 유신 당시에도 사법부가 위헌이나 무죄를 선고했어야 한다는 뜻으로, 과거 대법원의 과오를 스스로 반성하고 뒤집은 것이다.
내년 9월, 6년 임기를 마칠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취임 일성으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강조했지만, 그 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산 작업은 흐지부지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선고는 이 대법원장 퇴임 전에 과거사를 하나씩 정리한다는 차원으로 봐달라”고 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부에서는 건조한 위헌 판결문만 내놓은 채 통렬한 반성이 없다며 대법원의 ‘의지’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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