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비자금 출처 등 조사안해…‘플리바게닝’ 의심
지난 20일 한명숙(66)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공판에서 검찰의 ‘플리바게닝’(수사협조자 처벌감면)을 의심할 만한 신문 내용이 나왔다.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건넸다는 한아무개(49·수감중) ㅎ건영 전 대표의 진술이 번복되자 당황한 검찰이 한씨를 신문하면서 ‘속내’를 넌지시 드러낸 것이다.
검찰은 이날 9억원의 조성 경위와 관련해 “우리가 비자금 조사한 적 있나?”, “(달러 환전과 관련된) 외환관리법으로 우리가 질문이라도 한 적 있냐?”고 한씨에게 물었다. 검찰은 한씨가 회삿돈 9억원을 빼돌려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며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한씨의 횡령 혐의 등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실토’한 것이다. 검찰은 또 한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지도 않아,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해준 대가로 기소를 면해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22일 “한씨가 자수를 한 것으로 간주해 비자금의 출처는 조사하지 않았으며, 정치자금법의 ‘신고자 감면제도’에 따라 기소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최초 제보자는 한씨가 아니라 한씨와 다툼을 벌이고 있던 남아무개씨여서 왜 한씨가 감면 대상이 됐는지 분명하지 않다.
검찰은 지난 4월 무죄 선고가 난 한 전 총리의 5만달러 뇌물 의혹 사건에서도 플리바게닝 의혹을 산 바 있다. 한 전 총리에게 그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던 곽영욱(70·수감중) 전 대한통운 사장의 횡령액을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국동(61) 전 대한통운 사장에 비해 지나치게 낮춰 잡은 것이다.
게다가 검찰은 법정에서 검찰 조사 때와 다른 진술을 한 증인을 닦달하고 위증죄로 처벌할 듯 으르기도 했다. 한 전 총리의 ‘5만달러’ 사건 당시 총리실 공관 경호원이던 경찰관 윤아무개씨는 법정에서 “오찬장에서 총리가 다른 참석자보다 늦게 나온 경우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손님 중 맨 뒤에 나오며 돈을 의자 위에 놓았다”는 곽 전 사장의 진술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에 검찰은 윤씨가 진술을 멋대로 번복했다며 위증 혐의로 조사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4월 한 전 총리에게 무죄 선고가 난 뒤에도 윤씨에 대해 최종 처분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플리바게닝’과 ‘사법방해죄’ 등이 실시되면, 검찰의 진술 회유와 재량권 남용이 일상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