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일부 고3 선수들 대학 진학시키려 전국대회 승부조작
‘올림픽 금’ 코치가 주도…공모한 국가대표 코치 사퇴
‘올림픽 금’ 코치가 주도…공모한 국가대표 코치 사퇴
지난 3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 짬짜미’ 사건이 불거진 데 이어, 이번에는 고교 코치들이 서로 짜고 쇼트트랙 전국대회의 승부를 조작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3월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성남시장배 전국 중고 남녀 쇼트트랙 대회’에서 일부 고3 선수들이 입상할 수 있도록 경기 결과를 짜맞춘 혐의(공무집행방해 등)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코치 이아무개(45)씨의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은 또 이씨와 공모한 현 국가대표 코치인 이아무개(34)씨 등 코치 13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국가대표 코치 이씨는 이날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영장이 신청된 이씨 등은 지난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전국대회 입상 경력이 부족한 고3 선수들을 결승에 보내 입상시키자”고 짠 뒤 입상할 선수가 아닌 다른 선수들에게 시합에서 일부러 늦게 달리라고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 등은 또 입상할 선수끼리 순위 다툼을 하다가 실격자가 나올 것을 우려해 시합 당일 잔디밭에 모여 ‘가위바위보’로 메달 순위를 정했으며, 메달 순위가 정해진 선수들에게 “너는 1등이니까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라”, “너는 1등 뒤에 붙어서 타기만 하면 된다” 등의 지시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승부조작을 주도한 이씨가 이를 거부한 일부 코치에게 ‘폭탄을 심어 (경기 중에 선수들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협박했으며, 이런 사실이 새나가지 않도록 코치들에게 ‘백지 각서’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결국 시합 당일 선수 40명 가운데 이미 정해진 11명의 선수가 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전국대회 심판을 본 장아무개 심판장은 경찰에서 “결승에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선수들이 있는데, 엉뚱한 선수들이 올라오는 등 시합이 엉망인 것을 보고 장난(조작)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증거가 없어 중단시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선수들이 (입상경력이 없어)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 선수층이 얇아질 것을 우려해 승부를 조작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일부 대학의 수시모집 체육특기자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올해 초 국가대표 선발전 짬짜미 사건으로 국가대표 선발 본선은 ‘타임 레이스’(시간 경쟁) 방식이 채택됐지만, 다른 경기는 여전히 ‘오픈 레이스’(순위 경쟁) 방식으로 진행돼 승부조작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다른 대회에서도 승부조작이 있었는지 수사할 방침이며, 5년째 고교 전국대회를 주최했던 성남시는 승부조작이 알려진 뒤 내년 대회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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