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낸 소송서 “후작 작위는 무관” 판결…재산 환수도 불가
조선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 청풍군 이해승(1890~?·사진).
그는 한일 강제병합이 이뤄진 직후인 1910년 10월 일제로부터 조선인 귀족의 최고 지위인 후작의 작위를 받았다. 그해 일본을 방문해 천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이토 히로부미 묘에 참배를 했다. 이듬해에는 강제병합의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에서 16만8000원(현재 가치 34억여원)의 은사공채를 받았다. 28년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고, 41년에는 자발적 황국신민화운동을 벌이기 위해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42년 ‘총독이 내선일체에 큰 공적을 남겼다’는 글을 신문에 게재했고, 43년에는 징병제 실시 감사헌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돼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해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다. 이에 이해승의 손자 이아무개(71)씨는 이해승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성지용)는 “이해승이 일제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후작 작위에 대해선 “합병의 공으로 받았다고 추정하기 어렵고, 본격적인 친일행위는 그 이후부터 있었다”며 친일반민족행위에서 제외했다.
한편 같은 법원 행정7부(재판장 이광범)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특별법’이 시행된 뒤 이씨가 제3자에게 팔아치운 12필지의 땅이 친일재산이라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이씨가 낸 별도의 소송에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한일합병의 공이 있었다고 추단할 수 없다”며 친일재산 결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대법원 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가 이씨가 낸 다른 소송에서 “친일재산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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