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편집위’ 재능기부 받아 일반 책값에 문학전집 내
판형·글자 두배 커…공공도서관·서점 보급 토대닦아
판형·글자 두배 커…공공도서관·서점 보급 토대닦아
2007년 영국에선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가 두 가지 판본으로 출간됐다. 하나는 일반도서본이고, 다른 하나는 글자가 두 배나 큰 ‘큰글 책’이었다. 큰 글자로 인해 종이가 세 배가량 많이 들었지만 가격은 일반본과 같았고, 아무 서점에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의 왕립맹연구소 등은 ‘저시력자를 위한 책 읽을 권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는데,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이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영국처럼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자를 위한 큰글 책을 일반 책과 같은 가격으로 구입할 길이 열렸다. 출판사와 저자, 출판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큰글편집위원회’는 지난 9월 국내 최초로 ‘큰글세계문학전집 50종’을 선보였다. 세계문학 25권과 한국문학 25권 등 모두 50권이다.
큰글전집은 일반 책보다 판형과 글자 크기가 두 배가량 크다. 일반 책은 글자 크기가 10이지만, 큰글전집은 20.5로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저시력자, 노인 등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또 모든 페이지에는 음성정보 바코드인 ‘보이스 아이’가 인쇄돼 있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큰글편집위원회 박성희 공동대표는 “한국은 2008년 장애인차별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이 책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게 현실”이라며 “한국도 영국처럼 큰글 책을 손쉽게 일반 책과 같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캠페인을 시작하고 전집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캠페인 초기 위원회를 괴롭힌 건 가격이었다. 일반 책이 1만5000원이라고 하면, 큰글 책은 4만원가량 드는데, 보통 한 권의 큰글 책은 많아야 수요자가 200명 정도에 불과해 가격조정이 쉽지 않았다. 정부에 지원을 부탁했지만 “지금은 여력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결국 위원회는 정부 지원이 아닌 ‘민간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출판사와 저자, 번역자들을 일일이 만나 큰글 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출판사의 판권 양도 및 후원, 저자들의 재능기부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그 결과 웅진 씽크빅, 창비, 돌베개 등 세 곳의 출판사가 저작권 기부를 약속했다. 저자들의 재능기부도 잇따랐다. 민희식 전 한양대 교수가 <보바리 부인> 등 14종의 번역저작권을 기부했고, 신경림 시인, 황석영 작가 등이 위원회에 참여했다. 민 전 교수는 “돈을 벌기 위한 욕심을 조금 버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충분히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며 “재능기부나 저작권 기부가 활성화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큰글전집 발간을 계기로 위원회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 대표는 “전국 700여개의 공공도서관에 큰글 서가가 마련되고, 좀더 많은 종류의 큰글 책이 일반 도서와 같은 가격으로 보급되길 바란다”며 “3~5년 안에 큰글 책 1000종을 출간해 큰글 시스템이 정부와 출판계에서도 정책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현재 공공도서관에 큰글문학전집을 판매(02-2064-6167)하고 있으며, 조만간 일반인들도 구입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큰글인터넷서점’을 열 계획이다. 28일에는 서울 마포구 마포디자인지원센터에서 ‘큰글세계문학전집’ 출간 기념 저자·출판사 재능기부 협약식이 열린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큰글전집은 일반 책보다 판형과 글자 크기가 두 배가량 크다. 일반 책은 글자 크기가 10이지만, 큰글전집은 20.5로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저시력자, 노인 등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또 모든 페이지에는 음성정보 바코드인 ‘보이스 아이’가 인쇄돼 있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큰글편집위원회 박성희 공동대표는 “한국은 2008년 장애인차별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이 책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게 현실”이라며 “한국도 영국처럼 큰글 책을 손쉽게 일반 책과 같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캠페인을 시작하고 전집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캠페인 초기 위원회를 괴롭힌 건 가격이었다. 일반 책이 1만5000원이라고 하면, 큰글 책은 4만원가량 드는데, 보통 한 권의 큰글 책은 많아야 수요자가 200명 정도에 불과해 가격조정이 쉽지 않았다. 정부에 지원을 부탁했지만 “지금은 여력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결국 위원회는 정부 지원이 아닌 ‘민간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출판사와 저자, 번역자들을 일일이 만나 큰글 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출판사의 판권 양도 및 후원, 저자들의 재능기부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그 결과 웅진 씽크빅, 창비, 돌베개 등 세 곳의 출판사가 저작권 기부를 약속했다. 저자들의 재능기부도 잇따랐다. 민희식 전 한양대 교수가 <보바리 부인> 등 14종의 번역저작권을 기부했고, 신경림 시인, 황석영 작가 등이 위원회에 참여했다. 민 전 교수는 “돈을 벌기 위한 욕심을 조금 버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충분히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며 “재능기부나 저작권 기부가 활성화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큰글전집 발간을 계기로 위원회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 대표는 “전국 700여개의 공공도서관에 큰글 서가가 마련되고, 좀더 많은 종류의 큰글 책이 일반 도서와 같은 가격으로 보급되길 바란다”며 “3~5년 안에 큰글 책 1000종을 출간해 큰글 시스템이 정부와 출판계에서도 정책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현재 공공도서관에 큰글문학전집을 판매(02-2064-6167)하고 있으며, 조만간 일반인들도 구입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큰글인터넷서점’을 열 계획이다. 28일에는 서울 마포구 마포디자인지원센터에서 ‘큰글세계문학전집’ 출간 기념 저자·출판사 재능기부 협약식이 열린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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