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시민아파트인 서울 중구 회현동 제2시범아파트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40년 된 회현제2시민아파트
247가구 재난위험 속 남아
서울시-주민 4년째 갈등만
247가구 재난위험 속 남아
서울시-주민 4년째 갈등만
칼바람이 겨울 산자락을 타고 몰아쳤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서걱거리며 울었고, 언 몸을 움츠리고 오가는 사람들은 하얀 입김을 토해냈다. 수십년 전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놀이터에는 웃자란 잡초만이 가득했는데, 녹슨 미끄럼틀과 줄이 끊어진 그네 주변으로 구멍난 농구공과 찢어진 베개가 아무렇게 나뒹굴고 있었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회현동 남산 자락에 있는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황량했다.
곳곳이 벗겨지고 깨진 이 아파트는 1970년 5월에 완성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원조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남산 자락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무허가 불량주택을 밀어버리고, 도시 빈민들을 수용하려고 지은 아파트다. 회현 제1시민아파트, 와우아파트, 용강시민아파트, 금화아파트, 옥인아파트 등도 이 무렵 들어섰다.
초창기 이곳은 서울에서 인기 있는 아파트였다. 남대문시장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고, 남산 기슭에 있어서 공기가 맑았다. 최초의 중앙난방식 아파트로 언제나 따뜻한 물을 쓸 수도 있었다. 무허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뿐 아니라 ‘아파트’를 부른 가수 윤수일씨, 은방울 자매, 방송국 프로듀서, 중앙정보부 직원 등도 살았다.
그러나 여의도, 강남 등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내 구닥다리 아파트로 전락했다. 지난 세월 옛시대의 여러 시민아파트들이 철거되는 가운데 이곳만은 유일하게 남아, <소름> <친절한 금자씨> <주먹이 운다> 등의 영화 촬영장으로 이용됐다. 또 수많은 ‘출사족’(야외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모았다.
다른 시민아파트들처럼 철거 시도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서울시의 ‘회현 제2시민아파트 정리계획’이 수립되면서 주민 보상 절차가 추진돼왔다. 그러나 총 352가구 가운데 105가구만 보상이 마무리됐을 뿐, 나머지 247가구 보상이 4년째 표류하고 있다. 서울시가 철거민들에 대한 아파트 특별분양 제도를 2008년부터 폐지하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추첨을 통한 아파트 입주권과 감정평가에 따른 건물보상금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2003년 회현 제1시민아파트 철거 때처럼, 아파트 특별분양권 등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 박기철(55)씨는 “대부분이 이곳에서 수십년 살면서 어렵게 집 한 칸을 마련한 사람들”이라며 “시는 그들에게 안정적인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4년째 아파트에 아무런 손도 못 대고 있다. 주민 윤태성(60)씨는 “보상계획이 나고 감정평가가 시행되면서 보수공사나 외벽 도색 등을 할 수 없어 비만 오면 물이 새고 수도관에선 녹물이 나온다”며 “소방시설이 없고 소방차 진입도 어려워 화재위험도 높다”고 말했다.
이곳은 2004년 11월 재난위험시설 디(D)등급으로 지정됐다. 거주가 가능한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 깨지고 갈라진 공간 속에서 주민들은 기약 없는 보상을 기다리고 있고, 그렇게 마흔살 아파트의 한해가 또 저물고 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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