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통신기본법 어떻게 악용됐나
유선전화·전보밖에 없던 1961년에 제정된 전기통신법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허위의 통신을 발한 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전두환 정권에 들어 1983년 12월30일에 새로 제정된 전기통신기본법에도 이 조항은 살아남았다. 애초 ‘허위의 통신’이라는 취지는 통신의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가장해 통신을 하는 ‘명의의 허위’에 방점이 찍혔다. 그래서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군사정권 때에도 거의 없었다.
이처럼 사실상 사문화한 이 조항을 40여년 만에 부활시킨 것은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대검찰청은 인터넷에 퍼진 이른바 ‘광우병 괴담’을 처벌하려고 법규를 알아보다 이 조항을 찾아냈다. 검찰은 법조계의 우려에도 ‘공익을 해할 목적’, ‘허위의 통신’이라는 모호한 대목을 확대해석해 관련자 처벌에 나섰다. 휴대전화로 ‘휴교 시위’ 문자 등을 보낸 학생 등도 기소됐다. ‘전보 시절’에 만들어진 법으로 인터넷 세상을 잡도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이버 여론통제 도구로서의 ‘효용’이 입증되자 ‘남용’이 시작됐다. 처벌의 정점은 인터넷 경제논객인 ‘미네르바’ 박대성(32)씨의 구속 기소였다. 미네르바의 정부 비판이 계속되자 2008년 11월 당시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미네르바의 경제 분석·예측 의견을 처벌하려는 게 아니라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것”이라며 미네르바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논란이 됐던 이명박 대통령의 ‘주가 3000포인트’ 발언을 두고는 “분석·예측에 속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1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검찰의 남용은 계속돼 지난 3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쟁설을 퍼뜨린 사람들이 이 조항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최근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예비군 소집령 등을 퍼뜨린 이들이 기소되기도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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