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에 영포라인 흔들리면
입다문 ‘깃털’ 태도변화 가능성
입다문 ‘깃털’ 태도변화 가능성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청와대 대포폰’을 비롯한 의혹만 잔뜩 남긴 채 해를 넘기게 됐다. 그러나 과거 정권의 ‘권력형 비리’ 사건이 대부분 집권 4~5년차에 집중적으로 터져 나온 전례에 비추어 이 사건의 ‘감춰진 진실’도 앞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의 부실했던 수사 결과만 봐도, 민간인 사찰 과정에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연계된 정황은 많이 드러나 있다. 이영호(46)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 경북 영일·포항 출신 인맥으로 구성된 ‘영포 라인’은 수사 초기부터 지원관실의 ‘윗선’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이 전 비서관과 이인규(54·수감중) 전 지원관을 비롯해 불법사찰의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영일·포항 출신이었다.
이런 윗선 의혹은 청와대 대포폰을 통해 실체의 일부가 드러났다. 지원관실 공무원들이 수사를 앞두고 증거를 인멸하면서 청와대 행정관이 만들어준 대포폰을 이용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대포폰을 만들어준 최아무개 행정관은 불법사찰의 윗선으로 지목돼온 이 전 비서관의 하급자이자 포항 출신이다. 검찰이 확인한 청와대 출입 내역(2008년 7월~2010년 6월)을 보면, 이 전 지원관은 최 행정관을 모두 7차례나 만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런데도 검찰은 “청와대가 불법에 개입한 정황은 찾을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당사자들의 진술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살아 있는 권력’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핵심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지원관실 관계자들에게 청와대에 들어간 이유를 물었을 때 ‘청와대 매점에 갔다’는 황당한 진술을 한 피의자도 있었다”며 “권력 핵심부가 불법에 개입했다는 진술은 전혀 확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 관련자들이 앞으로도 이런 태도를 계속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과거 정권의 권력형 비리 사건은 대부분 잠복기를 거쳐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본격화하는 집권 4~5년차에 터졌다. 이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민간인 사찰 사건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평검사는 “현재 상황에서는 검찰이 재수사를 할 수 없는 게 맞지만, 진술이 달라진다면 그땐 전혀 새로운 국면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지점이 곳곳에 눈에 띈다”며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가 의혹의 당사자가 된 만큼 스스로 진실을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명백한 법치주의 위반인 민간인 불법사찰의 진원지가 청와대라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국민 누구도 이 정부가 외치는 법과 질서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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