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통신 위헌’ 대체입법 통해
인터넷 정보 불법성 판단
법원 아닌 방통위 손에 떠안겨
인터넷 정보 불법성 판단
법원 아닌 방통위 손에 떠안겨
헌법재판소가 지난 28일 ‘인터넷 여론통제 도구’라는 비판을 받아온 전기통신기본법의 일부 조항을 폐지하자, 한나라당과 정부는 마치 헌재가 사회 혼란을 일으킬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법적 공백을 명분 삼아 ‘개악’으로 맞서는 모습이다.
헌재는 앞서 8년 전에도 똑같은 취지의 위헌 결정을 했다. 당시에도 김대중 정부는 헌재 결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위헌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개악입법을 했지만, 헌법학계에서는 “이번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8년 전처럼 뒤틀어 개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는 현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인터넷에서의 ‘불법정보 유통’을 규제하고 있다. △음란물 △명예훼손 △공포·불안감 조성 △청소년 유해물 △사행행위 △국가기밀 누설 △국가보안법 금지행위 등이 촘촘히 걸러진다. 정보내용의 ‘불법성’ 판단은 사법기관이 아니라 일개 행정기관에 불과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일방적 심의로 이뤄진다.
애초 이 법조항은 옛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1항 ‘불온통신’ 규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기통신을 이용해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2002년 6월 “이런 식의 불온통신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불명확하고 애매하다”며 해당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헌재 관계자는 30일 “공공 안녕질서에 단순히 유해하다는 이유로 표현행위를 금지시킨다면 반대·소수의견,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표현 등은 차단되고 다양한 의견은 봉쇄된다는 것을 우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과 동일한 취지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는 꼼수를 부렸다. ‘불온통신’을 ‘불법통신’으로 바꾸고, 앞서 거론한 ‘타인 명예훼손 내용’, ‘불안감 유발’ 등 여전히 막연하고 모호한 표현이 담긴 9가지 규제행위를 나열하는 식으로 법을 바꿨다. 2007년에 이 조항은 정보통신망법으로 옮겨갔다.
헌재 관계자는 “정부나 정치권이 어떤 식으로든 ‘공익’이나 ‘허위 통신’ 내용을 구체화해 대체입법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거짓말의 유형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명백한 국가존립 위험 발생’으로 적용 대상을 좁히더라도 과연 이런 무시무시한 위험을 발생시킬 거짓말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법은 있어도 처벌할 대상이 없는 ‘과잉 입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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