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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철거코앞 왕십리 교회의 ‘마지막 새해’

등록 2011-01-02 21:22수정 2011-01-03 08:48

30년된 영화교회 뉴타운편입
쥐꼬리 보상탓에 이전 못해
주민들 모여 ‘송구영신 예배’
“공동체 구심점 사라져” 눈물
1일 0시,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동 216번지 일대엔 불 켜진 집 하나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이 골목은 왕십리 뉴타운 3구역 재개발 예정지로, 한때 ‘왕십리 곱창골목’으로 번성했던 곳이다. 적막한 골목 사이로 찬송가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이곳에서 30년 동안 주민들의 고된 삶을 위로하고 보듬었던 영화교회의 마지막 ‘송구영신 예배’가 시작된 참이었다. 이 동네를 먼저 떠났던 120명의 주민들이, 아직 동네를 떠나지 못한 교회로 모여들었다.

교회는 지난 12월26일 법원에서 ‘1월10일까지 이주하지 않으면 교회 건물을 강제 철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왕십리 뉴타운 3구역을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은 영화교회를 비롯해 4집이 전부다. 영화교회 김지현(45) 담임 목사는 “30년 동안 함께 지냈던 교인들과 함께 차분히 송구영신 예배를 하고 싶어 강제철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교회는 1980년 곱창골목의 20평 남짓한 공간에 7명의 신도가 모이면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인근 왕십리 주민들이 모여들면서 신도가 150여명으로 불어났고, 3년 전 김 목사와 신도들은 교회가 있던 자리의 2층으로 공간을 넓혔다. 건물 주인이 주변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 3700만원, 월세 170만원에 2층을 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공간을 넓히는 공사를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뉴타운 개발 인가 소식이 들려왔다. ‘비영리단체’이자 ‘임대 세대’로 분류된 교회에는 이주비용 4천만원이 책정됐다. 김 목사는 “이주비용으로는 예배당 내부 건축과 십자가를 옮기는 데도 턱없이 부족해, 기존 신도들이 함께 모일 공간을 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세입자들이 당장 거리에 나앉게 되듯이, 세들어 있던 교회의 처지도 다르지 않은 셈이다.

30년 동안 이 교회를 다녔다는 이승희(69) 장로는 “뉴타운 개발로 사람들이 하나둘 동네를 떠났지만 교회가 사랑방 역할을 해 공동체가 이어져 왔다”며 “교회가 없어질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장권능(19)군도 “부모님이 이 교회에서 결혼을 하셨고, 나도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추억이 많아 교회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왕십리 뉴타운 3구역에는 최고 25층 아파트 단지 210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곳에서 10년간 운영했던 3평짜리 봉제공장의 문을 닫아야 했던 홍진표(56)씨는 “언제 또 왕십리 사람들과 모여 새해를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이날 주민들은 함께 만든 복조리를 나누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교회 불빛은 밤이 이슥하도록 꺼지지 않고 있었다.

임지선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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