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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두번째 중국 답사…난생처음 맛본 ‘두만강 물고기’ / 이이화

등록 2011-01-06 09:07

1990년 여름 첫 중국 답사기행 때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연길에서 북한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도문의 다리 앞에 선 필자. 등 뒤쪽 관문 너머로 북한의 온성군 남양 시가가 보인다. 왼쪽 옆은 북한 주민들이다.
1990년 여름 첫 중국 답사기행 때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연길에서 북한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도문의 다리 앞에 선 필자. 등 뒤쪽 관문 너머로 북한의 온성군 남양 시가가 보인다. 왼쪽 옆은 북한 주민들이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62
1991년 7월5일부터 8월2일에 걸쳐 이어진 두번째 중국 답사는 일행이 조금 달랐다. 1차 중국 답사에서 너무나 미진한 부분이 많았던 나는 두번째 답사를 준비하면서 박완서·송우혜 두 작가 선생과 함께 가기로 뜻을 모았다. 이번에도 여강출판사 이순동 사장이 모든 주선을 해주었고 여정은 예전과 다름없이 홍콩을 거쳐 갔다. 우리 세 사람은 베이징의 유적과 만리장성을 돌아보았고 이어 선양으로 가서 지난해 답사 때 가지 못했던 요동의 백탑(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옴)과 단둥과 압록강 일대를 돌아보았다. 단둥에서는 역사학자인 박문호 선생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연길의 거리와 백산호텔은 남쪽 사람들로 지난해보다 한층 북적거렸다. 그래서 방이 모자랐다. 첫날 두 선생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보조침대를 바닥에 펴고 잤다가 다음날 별관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아는 사람이 늘어나서 더욱 분주하게 되었다. 임원춘·김택 등 작가들과도 어울렸다. 더욱이 박완서 선생의 애독자로 발이 넓은 이화숙 선생이 이리저리 연락을 해서 연길의 검사 2명이 우리를 안내 겸 보호해주면서 많은 편리를 제공했다. 뜻하지 않은 호강이었다.

우리는 용정의 윤동주와 송몽규의 묘소를 찾기도 하고 도문의 국경다리에도 갔다. 먼저 연길 시내 외곽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조선의용군 출신 작가 김학철 선생을 다시 찾아뵈었다. 그분은 우리를 만나자마자 김일성을 욕하는 말로 시작했다. 김일성이 독재자라는 것, 주체사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중국에서 활동한 조선 독립운동가를 정치적으로 탄압하고 있다는 것 등을 들어가면서 성토했다. 그 자신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연안파로 몰려 중국으로 망명해 온 처지였다.

임원춘 선생과 최정준 연변대 도서관장의 집에 초대도 받았다. 임 선생은 개를 잡아 대접했으나 먹을 줄 아는 이가 거의 없었고, 최 관장의 부인은 박 선생 작품의 애독자여서 더욱 반겼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일정에 맞추어 먼저 훈춘으로 내달렸다. 우리는 연길 검사들의 안내에 따라 인민검찰원의 여성검사인 이복순과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 중심가에 있는 모란봉식당으로 들어갔다. 바로 북한과 합작으로 운영하는 식당이다.

식당에는 방마다 구주성 등 역사기록화가 걸려 있었다. 음식은 종류도 많았는데 잉어회에는 처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바로 두만강에서 잡은 잉어회는 아직도 숨을 뻘떡뻘떡 쉬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임 선생이 한 마리를 거의 먹어치웠다. 내 인생 최초로 두만강 물고기를 먹는 게 신이 났던 것이다. 복무원 소녀는 간드러지게 ‘꽃파는 처녀’를 불렀다.

우리는 발길을 도문의 뱃놀이터로 돌렸다. 한 여인이 두만강물을 바라보면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남편의 뼛가루를 두만강물에 뿌렸다는 사연이었다. 이 언저리에 사는 조선족들이 죽은 영혼이라도 고향 가까이 가라는 뜻으로 치르는 장례 풍습이었다. 송 선생은 이 사연을 들어서인지 덩달아 울어댔다. 누가 더 서러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쯤에서 두만강 국경지대의 약사를 보자. 간도의 용정을 가로질러 흐르는 해란강은 도문에서 두만강과 합류한다. 도문에는 북한의 온성군 남양으로 통하는 육교가 있고 다리 양쪽에 북-중 사이 15개 관문의 하나인 출입국관리소가 있다. 현재 이곳은 두만강 지역에서 가장 많은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고 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온성군에 속하는 북한 땅은 오지에 속해 마을조차 보이지 않으나 일광산 정상은 시민 관광지가 되어 있다. 토사는 연달아 쌓이는 것 같고 강물은 흙탕이었지만 철조망은 보이지 않았다. 또 국경도시인 도문과 훈춘은 번화한 도시로 바뀌고 있으나 강변은 양쪽 모두 초라한 마을이 흩어져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도 단순하게 뻗어 있었다. 두만강 상류로 올라가는 작은 도시인 경신에도 북한과 통하는 출입국관리소가 있으나 초라했다. 경신을 지나 중국의 변경인 방천(防川·훈춘시에 속함)으로 다가가자 새로운 철조망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었다. 이 철조망은 일직선이 아니라 요철로 늘어서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니 언저리에 1860년 러시아로 영토를 내준 역사적 사실, 토계비를 중심으로 국경에 대한 설명 등 돌비들이 늘어서 있다. 중국인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거대한 세계제국 중국이 열강에 시달린 끝에 종이 한 장에 유럽의 다뉴브강 주변보다 더 큰 영토를 내주었으니 너무나 통탄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연해주를 포함한 러시아 동남부 시베리아 영역이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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