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민족일보·아람회 소송 등 판결…배상금 크게 줄어
민청학련 등 유사 사건에도 영향…“국가입장만 고려” 비판
민청학련 등 유사 사건에도 영향…“국가입장만 고려” 비판
군사독재 정권이 자행한 용공·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늦게 지급한 데 따른 ‘지연손해금’의 기산 시점을, 재심 무죄선고 뒤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 이후로 대폭 앞당겨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원심과 같이 지연손해금의 산정 기준을 최근 통화가치로 잡고 고문·가혹행위 등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부터 계산하게 되면 국가가 과도한 배상금을 물게 된다는 게 판단 이유다. 지난해 하급심에서 520억원 배상 판결이 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등 유사 사건 배상금도 크게 줄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13일 ‘남북 교류’ 등을 주장하는 기사와 논설을 싣다 북한에 동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기소돼 결국 사형당한 조용수 전 <민족일보> 사장의 유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자료(29억5000만원)와 47년간의 위자료 이자(69억8000만원)를 더한 99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원심을 깨고 이자를 2000여만원으로 크게 줄여 모두 29억7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확정판결했다.
대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시부터 장시간이 경과해 통화가치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는데도 덮어놓고 불법행위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합리적 이유 없는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앞서 원심은 지연손해금을 조 전 사장의 사형 집행일인 1961년 12월21일부터 계산했지만, 대법원은 손해배상 청구소송 변론이 끝난 지난해 3월16일부터 산정했다.
같은 재판부는 1980년대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아람회 사건’ 연루자들과 유족 등 3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206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깨고 9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확정했다. 또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돌아온 뒤 84년 간첩으로 몰려 징역을 산 서창덕(63)씨에게도 10억여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깨고 6억여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반면 재판부는 74년 발생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은 같은 취지의 판단을 하면서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조용수 전 사장과 아람회, 서창덕씨 사건은 원고들이 상고를 포기해 대법원이 위자료를 직접 결정했지만, 상고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은 하급심에서 지연손해금이 대폭 줄어든 점을 고려해 위자료를 일부 증액하라며 돌려보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심 배상액이 그대로 확정될 것이라 믿고 상고를 하지 않은 쪽은 적은 액수라도 위자료를 더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됐다.
이에 아람회 사건 변호인인 황정화 변호사는 “장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연손해금 기산 시점을 원칙과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본 근거가 부족하고, ‘장시간’에 대한 판단 자체도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석태 변호사는 “위자료와 지연손해금은 별개의 문제인데 뭉뚱그려 판단했다. 피해 회복을 해야 할 피해자보다는 국가의 관점에서만 본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김남일 송경화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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