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영하20도에도 어김없이 청소시간 ‘악몽의 30분’

등록 2011-01-17 20:42수정 2011-01-18 10:16

17일 새벽 1시30분께 서울역 역무과 직원들이 역사 청소를 이유로 노숙인 100여명을 30분간 역사 밖으로 내보냈다. 밖으로 나온 노숙인들이 짐꾸러미를 든 채 역사 앞을 서성이고 있다.  엄지원 기자 <A href="mailto:umkija@hani.co.kr">umkija@hani.co.kr</A>
17일 새벽 1시30분께 서울역 역무과 직원들이 역사 청소를 이유로 노숙인 100여명을 30분간 역사 밖으로 내보냈다. 밖으로 나온 노숙인들이 짐꾸러미를 든 채 역사 앞을 서성이고 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현장] 서울역 노숙인들 한파 전쟁
“얼어죽는다” 항의에도 출입문엔 결국 빗장
노숙인들 새벽 거리로
혹한 탓 응급상황 늘어 지원센터 일손도 부족
“나가주세요. 청소시간입니다. 2시에 다시 들어오세요!”

17일 새벽 1시30분. 서울역에 도착한 마지막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대부분 역사를 빠져나가자, 역무과 직원과 공익근무요원들이 2층 역사 안을 분주히 오가며 노숙인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30분 전쯤 3층 출발 대합실에 머물던 노숙인 수십여명이 막차가 출발한 뒤 2층 대합실로 쫓기듯 떠밀려난 터였다.

한 공익근무요원이 2층 구석에서 박스를 덮고 누워 있는 70대 노숙인을 깨우자, 이에 항의하는 40대 노숙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손에 컵라면을 든 또다른 노숙인도 “쫓아내지 마라. 얼어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소란은 잠시였다. 대합실에 머물던 100여명의 노숙인들은 채 5분도 안 돼 익숙한 걸음으로 역사를 빠져나갔고, 역사의 이중문은 굳게 잠겼다.

서울역은 매일 새벽 1시30분부터 노숙인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30분 정도 역사를 청소한다. 도착열차와 출발열차가 없어 이용객이 없는 유일한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서울역 관계자는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많아 청소를 하지 않으면 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공공시설이라 청결 유지를 위해 비눗물로 청소를 하기 때문에 노숙인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혹한의 겨울밤을 서울역에서 보내는 노숙자들에겐 이 30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10년 만에 찾아온 매서운 한파로 서울역 직원들도, 노숙인들도 모두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다. 기온이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던 16일 새벽만큼은 서울역도 노숙인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다.

역사 밖으로 떠밀려난 노숙인 가운데 일부는 서울역 지하도나 만화방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대부분은 출입문에 다닥다닥 붙은 채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하도보다는 잠시 추위를 견뎠다가 다시 역사로 들어가는 게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도 기온은 영하 16도, 체감기온은 영하 20도였다. 이중삼중으로 옷을 껴입고 털모자를 눌러썼지만, 바람이 속살까지 파고드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추위를 피하던 한 70대 노숙인은 “추운 날일수록 걸어야 한다”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새벽 2시께 역사 문이 열리자, 노숙인들이 3층 대합실로 뛰기 시작했다. 한 노숙인은 “3층 대합실은 밤에 불을 넣어주기 때문에 서울역에서 가장 따뜻한 명당”이라며 “3층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2층에서 자야 하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3층 대합실에 모인 노숙인 100여명은 조명을 피할 수 있는 기둥 뒤편으로 침낭을 깔고 다닥다닥 두 줄로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계속된 혹한으로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 응급구호와 지원사업을 펼치는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 직원들도 덩달아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16일엔 역사에서 잠을 자던 노숙인이 응급차에 실려갔고, 지난달엔 노숙인 한 명이 서울역 입구에서 심장마비로 숨지는 등 응급상황이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평소엔 주간 상담이 대부분이지만, 올겨울엔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노숙인을 상담하는 ‘심야 아웃리치’(상담 및 응급구호)가 새로 생겼다. 센터 직원 5명은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주 6일 근무를 하지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형운 현장지원팀장은 “응급구호 활동만으로도 하루가 다 간다”며 “다른 사업을 하다가도 긴급 상황이 생기면 상황 통제나 현장 상담기록까지 정리해야 해 활동가들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황춘화 엄지원 기자 sflower@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보온 안상수 뎐/진중권
중국 ‘젠-20’ 전투기, 인공위성도 공격한다
새벽 1시30분 서울역에 찾아오는 ‘악몽의 30분’
한나라 ‘세금폭탄론’ 카드 다시 꺼냈다
‘녹화 전 분위기 띄우기’ 우리가 책임집니다
수소폭탄 4개 실은 미군기 유럽 추락, 아찔한 핵사고 그 뒤……
‘제주어’ 사라질 위기 처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