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명 주주 10여명만 남아 병합 무효소송 제기 반발
업체 “공시의무 피할 목적”…전문가 “타기업 악용 우려”
업체 “공시의무 피할 목적”…전문가 “타기업 악용 우려”
1891만여주에 달하던 한 기업의 발행주식 수가 하루아침에 그 1만분의 1인 1880주로 확 줄었다. ‘1만 대 1’이라는 이례적인 비율로 주식액면병합이 이뤄진 탓이다. 회사 쪽은 ‘합법적 절차를 거친 경영상 목적’을 내세우는 반면, 1만주 미만의 주식을 내놓게 된 일부 소액주주는 ‘대주주의 소액주주 내쫓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 상상초월 주식병합 18일 법원과 증권업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온라인게임 개발·서비스업체인 ㅇ사는 지난해 11월 주식액면병합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열었다. 1주에 500원인 주식 1만주를 합쳐 액면가 500만원짜리 주식으로 만드는 정관 변경 안건이 통과됐다. 그 결과 비상장사인 ㅇ사는 1891만여주의 발행주식 수를 1880주로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ㅇ사는 애초 대주주 ㄱ씨와 1만주 이하의 소액주주 200여명이 지분을 나눠 가진 회사였다. ㅇ사의 공시자료를 보면, 2009년에는 5000원이던 주식 액면가를 500원으로 쪼개는 주식액면분할을 해 주식 수를 10배로 불렸다. 일반적으로 액면분할은 주식의 유동성을 높이고 소액 투자자들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지며 상장을 앞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1년여 뒤인 지난해 5월, 우리나라 양대 온라인게임업체 중 한곳인 ㄴ사가 대주주의 지분을 인수하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최대주주가 된 ㄴ사는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1주당 액면가의 10배인 5000원씩 쳐서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상당수 소액주주가 응했지만, 일부는 ㄴ사가 ㄱ씨한테서 주식을 사들인 가격(1만여원 추정)에 비춰 헐값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 9999주≠1주 ㄴ사의 적극적 매수로 1만주 미만 소액주주는 주주총회 직전, 20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줄었다. ㄴ사는 97%의 지분을 소유하게 됐고, ㅇ사는 액면분할을 한 지 불과 2년도 못 돼 다시 주식 수를 1만분의 1로 줄이는 주식병합에 들어갔다. 의결권이 있는 100여명의 소액주주들이 ‘단주’주주로 신분이 바뀌면서 추가로 떨어져 나갔다. 현재 남아 있는 주주는 10여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ㅇ사는 비상장주식 평가방법의 하나인 상속증여세법상의 주식평가방법을 적용해 단주를 주당 3840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에 일부 소액주주가 반발하고 나섰다. ㅇ사가 개발한 온라인게임이 국내외에서 수익을 내기 시작한 점과 이전에 1만여원에 거래된 주식 매매가격에 비춰, 3840원은 헐값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최대주주인 ㄴ사의 지분 확보를 위해 소액주주를 내쫓을 목적으로 1만 대 1이라는 비정상적 비율로 주식병합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난해 말 법원에 자본감소무효 확인 소송을 내는 한편, ㅇ사 대표와 임원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 “악용 우려” 이에 대해 ㅇ사 재무담당 임원은 “소를 제기한 주주는 애초 1만주 이상의 주식을 갖고 있어 주식병합 뒤에도 주주로 계속 남아 있다”며, 소액주주를 내쫓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매출이 300억~400억원에 불과한 비상장 회사인데도 사업보고서를 분기마다 내야 하는 등 경영상의 유무형적 비용이 들었는데 주주 수가 25인 이하가 되면 공시의무가 없어진다. 이 때문에 주식병합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회계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1만 대 1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율로 이뤄지는 주식병합은 한국에서 처음 본다”고 했다. 그는 “상장을 기대하고 주식을 가지고 있던 선량한 소액주주들을 축출하기 위해 주식병합이라는 형식적 감자 절차를 악용한 사례로 보인다”며 “이런 방식을 다른 기업도 악용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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