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독방 서 읽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이 내 인생 바꿔
22일 오전 11시 봉은사 법왕루에서 고 리영희 선생의 49재가 고인의 가족과 추모객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명진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리영희 선생이 극락왕생하길 바라지 않는다”며 “형형한 눈빛으로 우리가 잘못된 길 걸어가면 꿈속에라도 나타나 꾸짖어달라”고 말했다.
이날 명진 스님은 봉은사 주지를 그만둔 이후 처음으로 봉은사를 다시 찾았다. 그는 지난해 11월9일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직영 사찰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직후 봉은사를 떠났다. 현재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에서 수도 중이다.
명진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고 리영희 선생의 업적을 되새기며 현 정권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는 “80년대 성동구치소 독방에 갇힌 채 읽었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 두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꿨다”며 “선생은 내가 극락 가시라고 빌면 ‘나 극락 안가네, 이 세상을 극락으로 만들어보시오’라고 호통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 그는 “하늘에는 영문도 모른채 죽어가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퍼지고 온 땅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나라가 이명박씨가 바라는 선진국인가”라고 물었다. “경제적 발전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 땅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며 “가축을 살찌우려 소에게 소를 먹이고 운동을 못하도록 잡아넣어 면역력을 떨어뜨린 것이 이같은 사태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비비케이 동영상을 보면서 이제는 선거판이 달라지겠구나 했는데 이명박씨가 그런 거짓말을 하고도 5백만표 이상의 차이로 대통령이 됐다”며 “선거 직후인 2월10일 전쟁에도 불타지 않았던 남대문이 폭삭 가라앉고 숭례문 현판이 뚝 떨어진 것은 이 땅의 무서운 앞날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한 “갖은 범법 행위를 하고도 장관이 되겠다고 나와앉아있는 이들을 보면 이 나라의 도덕성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다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긴 숟가락을 가진 이들이 서로 먹으려는 곳이 지옥, 서로 먹여주는 곳이 극락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냐”며 “내 입에만 밥을 넣으려고 욕심부리고 밥상 뒤엎고 때려부수는 세상이 아닌, 리영희 선생이 원하는 ‘서로의 입에 밥을 떠넣어주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49재에는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 구중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정희성 시인,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이덕우 변호사, 정범구 민주당 의원, 양상우 한겨레 사장 당선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등 사회 각계 인사가 참석해 고 리영희 선생을 추모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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