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밤 10시께 서울 성북구 길음동 ‘그랑프리 빵집’에서 오기환(67)씨가 생크림을 만들기 위해 양푼에 달걀을 깨 넣은 뒤 이를 휘젓고 있다.
노숙인엔 공짜·2곳중 1곳 수익은 이웃돕기에
그랑프리 빵집 오기환씨 ‘박리다매’ 성공
제자들에 상호 무료 제공…60곳 문열어
“재료값 올라 3개 천원 유지 힘들어 걱정” 오기환(67)씨가 하얀 앞치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 팔뚝을 드러냈다. 걸쭉한 반죽을 담아 어른 장딴지만해진 원뿔형 비닐 짤주머니 ‘시보리’를 치켜든 오씨가 철판 위에 점을 찍듯 170g의 반죽을 정확히 짜냈다. 60개의 반죽이 담긴 두개의 철판이 오븐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고소한 향이 흘러나올 때쯤 귀여운 방울 모양의 구리빵이 완성됐다. 오씨는 서울 성북구 길음동과 도봉구 쌍문동 두곳에서 ‘그랑프리 빵집’을 운영한다. 그의 빵집 앞에는 ‘세개 천원’이라는 큼지막한 펼침막이 나붙어 있다. 동네 빵집이 하나둘 자취를 감춰가고 있지만 오씨의 빵집만큼은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든다. 24일 저녁 길음동 그랑프리 빵집에서 만난 오씨는 2003년에 공들여 가꾸고 운영해온 빵집의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가게에서 150m 떨어진 곳에 대기업의 유명한 빵집이 들어왔는데, 그 뒤로 장사가 점점 안되더군요. 2년을 못 버티고 접었어요.” 23살 때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해 경력이 30년을 훌쩍 넘는 베테랑 제빵사도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빵집을 정리한 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거리를 떠돌았어요. 길에서 만난 한 채소장수가 ‘시금치 세단에 천원~’ 하고 외치는 게 눈에 들어와 물어보니 하루 매출이 180만원이라더군요. 싸게 많이 팔면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그길로 오씨는 성북구 종암역 앞에 조그맣게 ‘그랑프리 빵집’을 내고 빵 세개에 천원을 받고 팔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던 제빵사들도 하나둘 같은 간판을 내걸고 독립하기 시작했다. 돈이 부족한 제자들에게는 제빵기계와 사업자금도 빌려줬다. ‘그랑프리 빵집’ 상호도 누구나 무료로 쓰게 했다. 오씨는 “서울에만 60개가 넘는 ‘그랑프리 빵집’이 있다”며 “건국대 앞이나 삼양동 같은 경우는 우리 빵집 옆에 소규모로 개업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문을 닫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값싼 빵이라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오씨는 말한다. 그는 “약간 저렴한 버터를 사용하는 것을 빼면 나머지 재료는 모두 똑같다”며 “오히려 기계로 찍어내는 빵보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우리 빵이 훨씬 낫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내부 장식이나 포장을 화려하게 하지 않는 것도 가격을 낮추는 데 보탬이 됐다. 이날 빵집에서 바구니 한가득 빵을 담던 이창현(59)씨는 “빵 맛도 좋고, 가격도 싸서 자주 온다”며 “서민들을 위해서 그동안 가격을 안 올렸으니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 여기서 빵을 사겠다”고 말했다. 오씨는 쌍문동 빵집의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쓴다. 강북구 우이동 92㎡(28평)짜리 빌라에서 아내와 둘이 사는 오씨는 이웃을 돕느라 자가용도 없다. 길음동 빵집에서 함께 일하는 김성연(49) 실장은 “노숙인이 오면 사장님이 자꾸 빵을 퍼줘 빵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빵 하나 달라는 사람 있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씨는 조만간 ‘세개 천원’이라는 펼침막을 떼야 할지도 모른다. 밀가루, 설탕, 우유 값이 지난해 말부터 많이 올랐다고 한다. “설이 지나고 팥앙금 값이 더 오르면 ‘두개 천원’으로 펼침막을 바꿔 달지, 장사를 접을지 고민이 많아요. 빵 세개를 먹으면 배부르니까 ‘세개 천원’을 한 건데…. 두개 먹고 배부르겠어요?” 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제자들에 상호 무료 제공…60곳 문열어
“재료값 올라 3개 천원 유지 힘들어 걱정” 오기환(67)씨가 하얀 앞치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 팔뚝을 드러냈다. 걸쭉한 반죽을 담아 어른 장딴지만해진 원뿔형 비닐 짤주머니 ‘시보리’를 치켜든 오씨가 철판 위에 점을 찍듯 170g의 반죽을 정확히 짜냈다. 60개의 반죽이 담긴 두개의 철판이 오븐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고소한 향이 흘러나올 때쯤 귀여운 방울 모양의 구리빵이 완성됐다. 오씨는 서울 성북구 길음동과 도봉구 쌍문동 두곳에서 ‘그랑프리 빵집’을 운영한다. 그의 빵집 앞에는 ‘세개 천원’이라는 큼지막한 펼침막이 나붙어 있다. 동네 빵집이 하나둘 자취를 감춰가고 있지만 오씨의 빵집만큼은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든다. 24일 저녁 길음동 그랑프리 빵집에서 만난 오씨는 2003년에 공들여 가꾸고 운영해온 빵집의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가게에서 150m 떨어진 곳에 대기업의 유명한 빵집이 들어왔는데, 그 뒤로 장사가 점점 안되더군요. 2년을 못 버티고 접었어요.” 23살 때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해 경력이 30년을 훌쩍 넘는 베테랑 제빵사도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빵집을 정리한 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거리를 떠돌았어요. 길에서 만난 한 채소장수가 ‘시금치 세단에 천원~’ 하고 외치는 게 눈에 들어와 물어보니 하루 매출이 180만원이라더군요. 싸게 많이 팔면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그길로 오씨는 성북구 종암역 앞에 조그맣게 ‘그랑프리 빵집’을 내고 빵 세개에 천원을 받고 팔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던 제빵사들도 하나둘 같은 간판을 내걸고 독립하기 시작했다. 돈이 부족한 제자들에게는 제빵기계와 사업자금도 빌려줬다. ‘그랑프리 빵집’ 상호도 누구나 무료로 쓰게 했다. 오씨는 “서울에만 60개가 넘는 ‘그랑프리 빵집’이 있다”며 “건국대 앞이나 삼양동 같은 경우는 우리 빵집 옆에 소규모로 개업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문을 닫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값싼 빵이라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오씨는 말한다. 그는 “약간 저렴한 버터를 사용하는 것을 빼면 나머지 재료는 모두 똑같다”며 “오히려 기계로 찍어내는 빵보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우리 빵이 훨씬 낫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내부 장식이나 포장을 화려하게 하지 않는 것도 가격을 낮추는 데 보탬이 됐다. 이날 빵집에서 바구니 한가득 빵을 담던 이창현(59)씨는 “빵 맛도 좋고, 가격도 싸서 자주 온다”며 “서민들을 위해서 그동안 가격을 안 올렸으니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 여기서 빵을 사겠다”고 말했다. 오씨는 쌍문동 빵집의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쓴다. 강북구 우이동 92㎡(28평)짜리 빌라에서 아내와 둘이 사는 오씨는 이웃을 돕느라 자가용도 없다. 길음동 빵집에서 함께 일하는 김성연(49) 실장은 “노숙인이 오면 사장님이 자꾸 빵을 퍼줘 빵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빵 하나 달라는 사람 있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씨는 조만간 ‘세개 천원’이라는 펼침막을 떼야 할지도 모른다. 밀가루, 설탕, 우유 값이 지난해 말부터 많이 올랐다고 한다. “설이 지나고 팥앙금 값이 더 오르면 ‘두개 천원’으로 펼침막을 바꿔 달지, 장사를 접을지 고민이 많아요. 빵 세개를 먹으면 배부르니까 ‘세개 천원’을 한 건데…. 두개 먹고 배부르겠어요?” 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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