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사회의 나눔 문화를 선도해 온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가 큰 틀에서 한 단계 발전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지난 수십년 정부가 ‘쥐어짜듯’ 주도해 온 모금 방식의 잔재를 청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원순 변호사의 ‘5가지 조언’
박원순 변호사는 2000년 아름다운재단을 시작으로 2001년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만들며 국내 나눔 문화를 이끌어왔다. 그는 “직장인들이 월급의 1%를 쪼개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이 트위터로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드는 등 지난 10년간 나눔 문화에 큰 변화가 있었다”며 “우리 사회가 ‘유턴’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외국의 선진적인 나눔 문화를 두루 경험한 그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에게 우리 나눔 문화의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바꿔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기업은 기부하지만
개인 CEO는 안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직은…
직장인들이 월급을 쪼개 내는 기부는 늘어난 반면 부자들의 기부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기업은 기부를 많이 하지만 기업의 오너나 최고경영자 개인은 기부를 많이 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는 기업이 아닌 개인, 주주, 투자자, 고액 연봉자들이 큰 규모의 나눔을 실천한다. 빌 게이츠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개인 재산을 기부한다. 빌 게이츠가 모범을 보이자 억만장자 40명이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에선 아직까지 유산 기부가 드물다. 부자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욕구가 많다. 하지만 유산을 주는 건 자식을 망치는 일이다. 각 지역의 풀뿌리 단체에 한 세대가 이뤄놓은 자산이 흘러들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한 사회의 철학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모금기관 회계 불투명 온라인으로 공개해야 모금기관은 투명성이 생명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 사건은 모금기관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다. 실제로 나눔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70% 가까이가 “믿고 기부할 곳이 없어서”라고 응답한 조사도 있었다. 이제 나눔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만큼, 모금기관의 재정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제3의 기관이 있어야 한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자신이 기부금을 낸 단체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10% 부가세 면제 등 비영리단체 세제혜택을 관변모금 의존 벗어나야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적십자사 등 중앙의 큰 기관을 통한 관변적 성격의 모금이 여전히 주류다. 이런 관변모금 기관이 아닌 비영리단체는 세제혜택도 받지 못한다. 아름다운가게조차 사기업과 똑같이 10%의 부가가치세를 낸다. 공공기관이 아니면 공익적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구시대적인 철학이 관련 법규들에 녹아 있다. 비영리단체의 기능이 공공기관과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세제혜택을 적극적으로 줘야 한다. 나눔 문화가 확산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려면 풀뿌리 모금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풀뿌리 모금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큰 단체들이 돈을 모아 자기 사업을 하기보다는, 각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돈을 모아 다시 좋은 단체에 배분하는 기관을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라 부르는데, 이런 기관이 많아져야 각 지역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당장 효과’만 보고 접근 중장기적 판단 선행돼야 기업 사회공헌 더 멀리 봐야 한국 기업들의 사회공헌 액수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지만, 그 지출방식은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재벌 기업의 경우 사회공헌 활동에 한 해 수천억원씩 쓴다. 이 정도면 세금 수준이다. 하지만 회사 오너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기부처를 정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 신문에 한 줄이라도 날 수 있는 ‘당장의 효과’에만 주목하기도 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좀더 멀리 내다보고 중장기적인 판단에 따라 꾸준하게 나아가야 한다. 기업들의 기부를 적선 행위처럼 바라보고 표현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도 문제다. ‘동정심 자극’ 모금 한계 다양한 주제 확장 ‘발목’ 앵벌이식 모금방식 동정심을 자극해 모금 활동을 벌이는 이른바 ‘앵벌이식 모금’이 나눔의 전부인 것처럼 비치는 것도 우리가 안고 있는 한계 가운데 하나다. 한국이 기본적인 복지제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에 동정심에 기반한 모금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복지국가가 되고 좀더 이성적인 사회로 업그레이드가 되면 나눔의 주제도 더 다양해질 것이다. 희망제작소처럼 문화예술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단체의 경우 모금 활동이 매우 어렵다. 기부는 반드시 사회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복지는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들은 나눔 문화가 덜하고 복지가 약한 나라는 나눔 문화가 튼튼하지만, 한국 사회는 복지와 나눔 문화 모두 약한 게 문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모금기관 회계 불투명 온라인으로 공개해야 모금기관은 투명성이 생명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 사건은 모금기관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다. 실제로 나눔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70% 가까이가 “믿고 기부할 곳이 없어서”라고 응답한 조사도 있었다. 이제 나눔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만큼, 모금기관의 재정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제3의 기관이 있어야 한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자신이 기부금을 낸 단체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10% 부가세 면제 등 비영리단체 세제혜택을 관변모금 의존 벗어나야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적십자사 등 중앙의 큰 기관을 통한 관변적 성격의 모금이 여전히 주류다. 이런 관변모금 기관이 아닌 비영리단체는 세제혜택도 받지 못한다. 아름다운가게조차 사기업과 똑같이 10%의 부가가치세를 낸다. 공공기관이 아니면 공익적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구시대적인 철학이 관련 법규들에 녹아 있다. 비영리단체의 기능이 공공기관과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세제혜택을 적극적으로 줘야 한다. 나눔 문화가 확산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려면 풀뿌리 모금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풀뿌리 모금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큰 단체들이 돈을 모아 자기 사업을 하기보다는, 각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돈을 모아 다시 좋은 단체에 배분하는 기관을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이라 부르는데, 이런 기관이 많아져야 각 지역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당장 효과’만 보고 접근 중장기적 판단 선행돼야 기업 사회공헌 더 멀리 봐야 한국 기업들의 사회공헌 액수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지만, 그 지출방식은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재벌 기업의 경우 사회공헌 활동에 한 해 수천억원씩 쓴다. 이 정도면 세금 수준이다. 하지만 회사 오너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기부처를 정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 신문에 한 줄이라도 날 수 있는 ‘당장의 효과’에만 주목하기도 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좀더 멀리 내다보고 중장기적인 판단에 따라 꾸준하게 나아가야 한다. 기업들의 기부를 적선 행위처럼 바라보고 표현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도 문제다. ‘동정심 자극’ 모금 한계 다양한 주제 확장 ‘발목’ 앵벌이식 모금방식 동정심을 자극해 모금 활동을 벌이는 이른바 ‘앵벌이식 모금’이 나눔의 전부인 것처럼 비치는 것도 우리가 안고 있는 한계 가운데 하나다. 한국이 기본적인 복지제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에 동정심에 기반한 모금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복지국가가 되고 좀더 이성적인 사회로 업그레이드가 되면 나눔의 주제도 더 다양해질 것이다. 희망제작소처럼 문화예술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단체의 경우 모금 활동이 매우 어렵다. 기부는 반드시 사회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복지는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들은 나눔 문화가 덜하고 복지가 약한 나라는 나눔 문화가 튼튼하지만, 한국 사회는 복지와 나눔 문화 모두 약한 게 문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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