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노동자들에 전화…고용승계 내세워 회유·협박
홍익대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한달 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경비노동자 ㅇ씨는 지난 28일, 자신의 전 고용업체였던 ㅇ용역업체 현아무개(58) 현장소장의 전화를 받았다. 현씨는 “ㅇ용역업체가 새로 홍익대와 용역계약을 맺기로 했으니, 나를 믿고 농성장에서 나와서 계약하라”고 말했다. ㅇ업체는 홍익대가 새 용역계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업체였다. 홍익대는 지난 27일 청소·경비·시설관리 용역업체 우선협상대상자로 3개업체를 선정한 바 있는데, 이 가운데 한 업체가 기존 노동자들한테 고용승계를 보장한다며 사실상 ‘농성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ㅇ씨는 “현씨가 특정 동료들을 거론하며 ‘그들한테도 (계약) 권유를 해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하루 동안 전 현장소장 현씨의 연락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1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ㅇ씨는 “나를 떠보는 건데 속이 빤히 보여 분하다”고 말했다.
농성을 진행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회유와 함께 은근한 협박도 이어졌다. 현씨는 또다른 조합원 김아무개(48)씨에게 28일 저녁 전화를 해 “ㅇ업체와 계약이 됐으니 계속 근무할 생각이 있으면 계약서를 쓰라”며 “(계약을 하지 않으면) 당신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워넣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설관리를 맡은 ㅂ업체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 세 명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계약을 하자고 권유했다가 조합원들이 “노조 간부와 함께 나가겠다”고 밝히자 “없던 일로 하자”며 전화를 끊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순한 사람들만 골라 회유와 협박을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공노조 서울경기지부 홍익대분회는 지난 31일 홍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익대와 우선협상대상 용역업체가 농성 조합원들의 농성장 이탈을 유도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공인노무사는 “해당업체가 현재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어서 법률적으로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긴 어렵지만, 조합원 개개인에게 연락을 해 계약을 맺자고 설득하는 것은 전형적인 노조 교란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 현장소장 현씨는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연락한 것일 뿐, 농성 해제에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현씨가 거론한 o업체는 “급여나 근무여건 등을 몰라 전임 현장소장을 수소문해 노동자들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맞다”고 밝혔고, 시설관리를 맡은 ㅂ업체도 “고용승계를 위해 연락을 했으며, 농성중인 조합원인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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