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사망사건 비난 확산
법조계 일각서 법제정 여론
법조계 일각서 법제정 여론
#1. 지난해 1월15일 아침 7시께 한국철도공사 서울역 역무과장이던 박아무개(45)씨는 2층 대합실에 쓰러져 있던 노숙자 장아무개(당시 44살)씨를 발견했다. 장씨는 갈비뼈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박씨는 그런 사실을 몰랐고, 장씨를 역사 밖으로 내몰았다. 그날 체감기온 영하 9.7도. 장씨는 결국 혹한 속에 숨졌다.
#2. 2007년 12월 최아무개씨는 술에 취해 부인 이아무개(당시 38살)씨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을 했다. 최씨는 급기야 과도를 들고 이씨를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최씨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자기 무릎을 찔렀고, 부인 이씨는 최씨의 휴대전화를 들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 최씨는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었다.
#3. 2007년 7월 새벽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계단에서 입주민이 하반신을 노출한 채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경비원 최아무개는 이를 방치했고, 그 입주민은 계단에서 굴러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3시간 뒤 숨을 거뒀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유기’ 사건에 있어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법한 사건에서도 법의 잣대는 냉정하다. 법률상 계약상 보호의무가 있을 때만 유죄를 인정한다.
역무원은 ‘노숙자를 퇴거할 수 있다’는 철도안전법을 따른 것일 뿐 노숙자를 보호할 법적 의무가 없다. 따라서 무죄다. 반면 부상을 입은 남편을 버린 부인과 입주자를 돌보지 않은 경비원은 유죄가 인정됐다. 남편과 입주민을 살필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판결은 이처럼 명쾌하지만 노숙자를 죽음으로 내몬 ‘냉정한 행정’에 대한 비난은 확대되는 모양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구호가 필요한 사람을 못 본 척 지나치는 경우, 이를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 제정도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16일 검찰의 한 간부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소규모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복잡다기한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을 처벌하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