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실형을 산 전창일(오른쪽 둘째)씨 등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 등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국가배상 판결에 대한 재심 신청을 밝히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인혁당 피해자들, 대법에 재심 청구
“1·2심 판결에서 정해진 보상금의 일부를 미리 받아 집 한 채를 겨우 샀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로 국가가 그 돈을 다시 환수하겠다고 하니 샀던 집을 다시 내놓아야 할 처지다.”
전창일씨는 아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정연한 말투로 대법원 판결의 부당함을 짚어냈다. “유신시절,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때의 심정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전씨는 1975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다. 2008년 법원은 전씨를 포함해 중형을 선고받았던 이들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지속적인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대법원은 전씨 등 피해자들과 유족 등 6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 선고에서 “수십년 동안 오른 통화가치 등을 고려해 배상이 늦어진 데 따른 이자를 계산해야 한다”며 배상액을 원심보다 수백억원이나 깎아 버렸다. 국가가 저지른 용공·조작 사건에 휘말려 이렇다할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피해자들은 항소심 판결 뒤 보상액의 일부를 미리 지급받았지만, 대법원 판결로 무려 180억원을 토해 내야 할 처지다.
25일 오전 전씨 등 피해자들은 대법원에 이 사건의 재심을 신청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송상교 변호사는 “기존 판례는 배상금 이자를 불법 행위가 있었던 때부터 계산해 왔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판례를 바꾼 것인데도 대법관 전원이 모이는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아 법원조직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대법원은 ‘과잉배상’을 말하지만 어느 정도가 적정한 배상이고 과잉배상인지에 대한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16일에는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로 배상액이 크게 깎인 <민족일보> 사건,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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