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기한 4년이 끝난 2009년 11월 필자(오른쪽 다섯째)를 비롯한 자문위원들이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함께 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09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했다. 무려 5년에 걸친 입법 투쟁 끝에 그해 5월3일 통과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에 근거한 특별 한시기구였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기구로 규정됐다. 위원회 구성은 장관급인 위원장 1명과 차관급인 상임위원 3명 그리고 비상임위원 11명으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과거 조사를 바탕으로 사면복권 건의 등 명예회복 조처를 하도록 했다. 특히 부당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들이 시효와 상관없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피해자 보상에 대한 논의도 담당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진실화해위는 협소한 기구가 되고 말았다. 물론 과거사법이 한나라당의 반대 속에 누더기법이 됐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군 의문사와 민주화운동, 앞서 진상규명이 진행중인 제주4·3사건, 노근리 사건 등은 중복된다는 이유로 조사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조사 시한을 너무 단기간으로 못박아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위원회는 최초의 조사 개시 결정일로부터 4년간 활동하며 2년의 범위에 한해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2010년 1월22일 전원위원회에서 2개월6일간을 연장해 그해 6월30일 조사활동을 끝냈다. 이후 6개월 동안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위원회는 지난해 12월31일로 활동을 마치고 사라졌다. 진상을 밝힌 사건보다 훨씬 더 많은 의혹사건들을 남겨둔 채로 말이다.
그나마 초대 위원장으로 양심적인 송기인 신부가 취임하자 범국민위는 최소한의 기대를 갖고 협력하기로 했다. 해마다 합동위령제를 거행하는 등 여러가지 추모행사를 벌여 여론을 환기했다. 나는 진실화해위의 자문위원을 맡아 6년 동안 참여했으나 어디까지나 자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동춘·이영일·장완익 등 범국민위의 일꾼들이 진실화해위나 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활약했고 이창수·이춘열은 범국민위에 남아 뒷받침을 했다. 과거사위의 2기 위원장에는 안병욱 교수가 임명되어 주어진 여건에서 여러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가지 덧붙일 얘기가 있다. 이 과거사 청산작업의 일선에는 시민운동가·종교인·변호사 그리고 전공학자들이 적극 참여했다. 이들은 그야말로 이해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적인 활동을 했다. 주요 과거사 문제들이 역사의 단계마다 전개된 사건이었던 만큼 이를 청산하는 작업에는 근현대사를 전공한 정치·사회·역사학자 그리고 인권 연구자들의 구실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앞에서도 여러차례 지적했듯이, 과거사 청산 작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나름대로 진전을 이루긴 했으나 미흡한 입법과 제한적인 활동, 이후 이명박 정부의 ‘뒤집기 시도’까지 더해지면서 여전히 미완성의 과업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직접 관련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시민 차원의 민간재단을 설립해 지속적인 청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 규명 작업과 함께 기념관·자료관 등을 건립해 시민적 인식을 일깨워야 한다. 불과 수년 사이,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민족적 행태와 진실을 덮으려는 가해 당사자들의 역사왜곡 시도가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 필요성을 증명하지 않는가.
흔히 역사는 옛날 일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토대를 두고 지난 일을 읽어내고 정의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의식이 결여된 역사가는 한낱 기록자일 뿐이다. 민족적으로 청산해야 할 과거사가 산적해 있는 오늘날, 이 시대 역사가들은 역사 또는 사회의 부름에 소명을 갖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한갓 밥벌이 수단으로 지식을 이용한다면 훗날 호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반대세력이 끊임없이 훼방을 놓고 모략중상을 일삼을지라도 꿋꿋하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똑바로 굴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분명 인권 후진국이었으나 미흡하나마 왜곡된 과거사 청산 노력을 함으로써 인권을 보장하는 미래사회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적 폭압, 민족적 편견, 종교적 차이, 국가 사이의 이해에 따른 인권유린과 대량학살 행위가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이제 우리의 경험을 인권을 지키는 국제적 연대를 이루는 데 기여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역사학자
앞에서도 여러차례 지적했듯이, 과거사 청산 작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나름대로 진전을 이루긴 했으나 미흡한 입법과 제한적인 활동, 이후 이명박 정부의 ‘뒤집기 시도’까지 더해지면서 여전히 미완성의 과업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직접 관련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시민 차원의 민간재단을 설립해 지속적인 청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 규명 작업과 함께 기념관·자료관 등을 건립해 시민적 인식을 일깨워야 한다. 불과 수년 사이,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민족적 행태와 진실을 덮으려는 가해 당사자들의 역사왜곡 시도가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 필요성을 증명하지 않는가.
역사학자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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