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유학생들(왼쪽 팻말 든 이와 오른쪽 뒷모습)이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일본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려대·건국대 등서 성금모금 나서…반향 뜨거워
“대재앙 앞엔 역사문제 잊어야” 중국 학생도 동참
“대재앙 앞엔 역사문제 잊어야” 중국 학생도 동참
“일본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와주세요!”
16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학생회관 앞에서 열린 ‘2011 동아리 박람회’ 한 켠에서 서툰 한국어 발음의 절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일본인 유학생 10여명으로, 이들은 이날 라면상자로 급하게 만든 손팻말에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주세요. 지진보다 더 큰 사랑의 울림이 필요한 때입니다”라고 써놓았다.
앞서 고려대에 재학중인 일본인 학생 60여명은 지난 14일 회의를 열어 ‘동북아 대지진 지원 단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다. 성금을 모아 고국에 보내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박람회장의 한쪽 코너에 모금활동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16일부터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들과 함께 모금활동을 벌인 중국인 교환학생 호우이류(20)는 “중일간 관계 개선을 위한 바람으로 모금에 참여하기로 했다”며 “이런 대재앙 앞에서 역사적인 문제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은 성금을 모으면서도 피해지역에 있는 지인들을 끊임없이 걱정했다. 지난 7일 한 달짜리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에 온 야마네 메구미(19)는 “이와테현에 있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음식이 부족하고 날씨가 너무 춥다고 했다”며 “친구를 위해 뭔가를 하려고 여기에 나왔다”고 말했다. 오는 31일 어학연수를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인 아야 야마나카(18)는 “친구 한 명이 센다이시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사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울먹였다.
오전 11시45분께 건물에서 강의를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프레이 포 저팬(Pray for Japan·일본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쓰인 모금함을 든 타바타 나나코(21)가 “일본 대지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와달라”고 소리치자, 신성환(23·법학과3)씨가 모금함에 돈을 넣었다. 신씨는 “일본 같은 강대국이 무너지는 모습에서 무력감을 느꼈다”며 “물과 이불이 부족한 이재민들에게 성금이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후 1시가 넘자 모금함에는 1000원짜리와 만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였다. 5만원짜리도 제법 눈에 띄었다. 성금을 낸 이윤하(19·영어영문학과1)씨는 “물에 주검이 떠다니는 뉴스 영상을 보고 울컥했다”며 “아직 구조되지 않은 이들의 수색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고려대뿐 아니라 건국대, 동국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의 대다수 대학에서 일본인 유학생들의 주도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유진 박보미 기자 yj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