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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재난 돕는 풀뿌리들이 ‘한·일 미래’의 돛 달때다

등록 2011-03-23 21:32

최열
최열
‘일본에 희망을
’한겨레-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캠페인
릴레이 기고 / 최열
나는 반일주의자였다. 1975년 명동카톨릭학생총연맹 사건으로 투옥돼 있던 시절,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을 읽고 하루를 시작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변했다. ‘일본 사람’ 덕분이다. 감옥에서 공해와 환경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당시 국내에는 관련 책이 아예 없었다. 일본 엠네스티 사람들은 일본의 수많은 환경 책을 감옥으로 보내주었다.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 등을 파헤친 우이준 박사는 “공해문제에 접근할 때 공해 피해자의 말을 들으라”는 충고를 책에 적어주었다. 의사인 하라다 박사는 1985년 국내 학자들이 관여하기 꺼리던 온산지역을 함께 돌면서 ‘온산병은 공해병’이라는 걸 확인해 주기도 했다. 죽음의 마을 온산에 살던 1만여명의 이주를 도운 은인이었다.

지난 3월11일 이후 일본인들이 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한 일본인 노신사를 떠올렸다.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2005년부터 함께하는 공동크루즈 피스앤그린(Peace&Green) 보트에 매년 참석하는 사업가다. 광복 당시 울산에서 태어났다는 그분은 매일 저녁 맥주를 한 박스씩 사왔다. 갑판에서 파티가 열릴 때면 한국인에게 일일이 맥주를 권하며 “과거 조상들의 만행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언제나 그렇듯 국가 권력을 잘못 쓴 권력자들이 문제일 뿐, 한·일 국민에겐 훈훈한 정이 넘쳤다. 이번 재난에 우리 국민의 성금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웃의 고통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기엔 우리의 양심이 꿈틀거린다. 그들은 동아시아에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 아닌가.

이 재난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진의 위험과 21개의 원전을 가진 우리의 문제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사고 이후 현 정부와 원전 담당자들은 “우리는 안전하다”고 앵무새처럼 되뇌고, 서울대 모 교수는 “방사성 물질이 다 해로운 게 아니다”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신규 핵발전소를 중단하거나 재검토한다고 발표해도, 우리나라만 꼿꼿이 버티고 있다. 스리마일섬,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까지 세 번의 대형사고 앞에서도 반성이 없는 걸 보면서, 핵 추진세력에 분노에 앞서 절망을 느낀다.

20년 전, 일본의 세계반핵대회에서 20대 청년을 만났다. 그는 구소련의 세미파라친스크 핵실험으로 방사능에 피폭돼 양팔이 없는 채로 태어난 기형아였다. “나는 팔이 없지만 가슴을 가지고 있다. 남들처럼 사랑도 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나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겨나선 안 된다.”

당시 소련 정부로부터 핵실험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들은 바 없었던 그 청년처럼, 우리도 똑같이 “핵발전은 공해가 없고, 안전하고 싸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에 지금까지 세뇌되고 있다. 오죽하면 1978년 우리나라에서 첫 가동된 고리 원전 1호기 근처의 아파트 이름이 ‘핵광아파트’요, 발전소 앞 정육점은 ‘원자력정육점’이었겠는가. 체르노빌 사고 때 정부당국자는 “사회주의 체제라 안전기술이 부족해서 난 사고”라고 했다. ‘안전신화의 상징’인 일본에서 사고가 나자, 이번에는 “일본과 우리의 원전 구조는 다르다”며 말을 바꾸고 있다.

체르노빌 사건 때 유럽 각국에서는 7세 미만 어린이에게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 섭취를 금지시켰다. 그 남은 우유를 강에 버리자니 지역주민이 반대하고, 분말로 만들어 땅에 매립하려니 환경단체가 반대했다. 그 분말우유는 한국 등에 수출되어 유제품으로 가공되어 우리 아이들이 먹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방사능 기준치조차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폭발 이후 현재까지 원자력 문화재단에 전화하면 “원자력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에너지원입니다”라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결국 나누고 돕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국민이다. 이번 재난을 도우면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작고 아름다운 모임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이런 풀뿌리 운동을 통해 신규원전 계획을 추진하는 권력의 일방성을 막을 수 있다.

몇 년 전, 피스앤그린 보트에 참여했던 고 이윤기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한일 관계에서 과거는 닻, 미래는 돛이다”라고. 배는 닻이 없으면 바람에 휩쓸려 좌초당하고, 돛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돛을 달 때다. 나도 2009년 이후 멈췄던 피스앤그린 보트 출항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꿈꾸는 젊은 자원봉사자를 가득 태우고 일본을 찾아야겠다.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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