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집회신고, 씁쓸한 ‘노노대결’

등록 2011-03-25 18:37수정 2011-03-25 20:21

집회신고, 씁쓸한 ‘노노대결’
집회신고, 씁쓸한 ‘노노대결’
목소리 높여야 원청업체서 일자리 주니…
양대노총 타워크레인노조 한밤 쟁탈전
건설불황·조합원 고용기피탓 ‘살풍경’
“한심한 것 알지만 생존권이 달려…”
자정을 20분 앞둔 지난 5일 밤, 서울 동작경찰서 정문에 9명의 남자가 모여들었다. 아직 추운 날씨 때문인지 몸을 움츠리고 있던 이들은 자정이 가까워오자 긴장한 표정으로 준비자세를 취했다. 밤 12시가 되자 “뛰어!”라는 구호와 함께 9명이 동시에 가파른 오르막길에 있는 20m 앞 초소로 내달렸다. 4초 남짓한 짧은 시간에 이내 순서가 갈렸다.

그런데 가장 먼저 도착한 이아무개(33)씨가 넘어지며 초소 접수대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렸다. “아이×, 밀면 안 되지!”, “내가 언제 밀었다고 그래?” 욕설이 오가는 험악한 실랑이 끝에 이아무개(41)씨가 폭행 혐의로 체포돼 새벽 5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이마가 찢어진 이씨는 병원에서 12바늘을 꿰맸다. 서로 다툰 이들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타워크레인노동조합 조합원들로, 이날 벌어진 살풍경은 서울 동작구의 한 공사현장 앞에 먼저 집회신고를 하려다 생긴 일이다. 이들은 왜 집회신고에 이렇게 목을 매는 것일까?

이들의 도착 순서, 즉 집회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이들의 생존권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집회신고를 내려고 대기하던 민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 김아무개(50)씨는 “생각해보면 한심하고 자존심 구기는 일”이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우리를 고용하는 원청업체는 근로기준법 준수 때문에 조합에 가입한 크레인 기사를 되도록 채용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대신 경력이 짧고 임금이 싼 비조합원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은 공사현장 앞에서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 등 집회를 열어 자신을 채용해달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김씨는 “이렇게라도 해야 원청업체에서 우리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일자리를 준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20년 동안 타워크레인를 조종해온 김씨는 일을 못한 지 10개월째가 됐고, 김씨가 소속된 남서지회 조합원 140여명 가운데 50여명도 일을 구하지 못해 쉬고 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노조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각각 따로 있는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두 노총 소속 조합원들끼리 구역 다툼을 벌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한국노총 타워크레인 노조 유상덕 위원장은 “인천 쪽에는 일자리가 워낙 없어 개발 가능성이 큰 서울로 자리를 옮기다 보니 경쟁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 때문에 지난 10일부터 이른바 ‘달리기 집회신고’ 방식은 사라졌지만, 대신 집회신고를 위해 경찰서 안에서 24시간 동안 기다려야 한다. 현재 서울 시내 강서·동작·영등포경찰서 세 곳에서 두 노총이 경쟁하고 있다.


건설경기 불황과 원청업체의 노조 조합원 고용 회피 등 두 노총이 처한 위기는 비슷하지만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민주노총 타워크레인 노조 이수동 위원장은 “우리가 힘들게 투쟁해 얻은 단체협상 성과를 뒤늦게 만들어진 한국노총이 힘들이지 않고 가져가거나, 오히려 후퇴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한국노총 쪽의 유상덕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인원을 무기로 우리 조합원의 취직을 방해하고 있다”며 “같은 노동자끼리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오동진 부소장은 “문제의 원인이 원청업체 쪽에 있는 만큼, 처한 상황이 비슷한 두 노총 소속 조합이 노동자 단결과 지속적인 고용보장을 함께 이뤄나가는 방식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