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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바늘이 살 파고들자 입에선 거짓자백이…

등록 2011-03-28 20:54수정 2011-03-29 09:36

보안사, 민간인 불법연행 20일 넘게 전기·물고문
안기부, 수사관 명의 빌려줘…검찰·법원은 ‘들러리’
재심 무죄 확정 ‘82년 재일간첩 조작사건’ 재구성

■ 보안사 “카펫이 왜 빨간 줄 알아? 너 같은 놈들을 두들겨 패서 흘린 피로 물들었다. 전부 핏자국이다.”

1982년 일본을 출발해 김해공항에 막 도착한 최양준(72)씨는 곧바로 보안대 수사관들에게 영장 없이 연행된 뒤 ‘삼일공사’ 간판이 붙은 건물로 끌려갔다.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보안대가 최씨를 끌고 간 부산501보안부대 지하조사실의 카펫은 빨갰다. 최씨는 돈 벌러 간 일본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자 현지 일본인의 도움으로 위조여권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 사실이 들통나 한국으로 강제송환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20일 넘게 각목으로 두들겨 맞고, 성기를 비롯해 온몸에 전깃줄을 두른 채 전기 지짐을 당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채 물고문도 받았다. 솜이불을 누빌 때 쓰는 대바늘이 손톱 밑을 파고들자, 그의 입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벌이고, 북한에 가선 김일성을 만났다고 줄줄 얘기하고 있었다.

■ 안기부 서류상 최씨의 피의자신문조서, 수사보고를 작성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관 이아무개씨는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던 터라 최씨 사건을 보안사에 빼앗기고 말았다. 난 최씨를 본 적도 없고 조서에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보안대 수사관들은 “민간인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보안사에서 수사를 다 한 뒤 안기부에서 정해준 수사관의 이름을 적어 넣고 나중에 한꺼번에 날인을 받아 검찰에 송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 검찰 최씨는 한 달여 만에 간첩 혐의를 달고 검찰로 송치됐다. 검사실까지 따라온 보안사 수사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최씨는 검사에게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당시 검사의 이름과 그가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 사람이 했다고 해놓고 왜 안 했다고 해. 또 고문을 받아봐야 진실을 얘기하겠느냐.” 이 검사는 나중에 서울지검장과 부산고검장을 지낸 임휘윤씨라고 했다. 그는 1980년대 대표적 간첩 조작 사건인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의 담당 검사이기도 했다.

■ 법원 법원도 불법 구금·고문·혐의 조작을 허투루 보고 그냥 넘어갔다. 허술한 수사기록으로 포장된 간첩 혐의에 1·2심은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확정했고, 9년을 복역한 최씨는 91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2009년 과거사위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가에 재심을 권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최씨의 간첩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28년 만이다.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국가가 최씨에게 저지른 폭력을 에이(A)4 다섯장에 걸쳐 자세히 ‘판례’로 남겼다.

같은 부는 또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춘환(65), 유명록(65), 임봉택(64)씨의 재심 사건에서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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