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
대법원장, 법관 임명식서 국민신뢰 강조
‘선출되지 않은 권력.’ 국민이 직접 뽑지 않았는데도 막강한 사법권을 행사하는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등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사법부의 독단이나 잘못을 지적할 때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는 뜻에서 이 표현을 곧잘 쓰곤 한다.
그런데 이용훈(사진) 대법원장이 1일 법무관 출신 신임법관 임명식사에서 ‘선출되지 않은 법관’을 직접 언급했다. 사법부의 수장이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이 대법원장은 “재판권은 법관이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 행사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관들은 국민들로부터 직접 선출되지 않았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되기는 했지만 거의 모든 법관들은 국민의 신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것만이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하면서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의 전폭적 신뢰 없이는 사법부의 존재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 2월 말 사법연수원 출신 신임법관 임명식사에서도 여러 차례 ‘국민의 신뢰’를 강조했지만, 그보다는 사법권 독립에 무게를 더 실은 바 있다. ‘선출되지 않은 법관’ 발언으로 스스로 몸을 낮춘 것을 두고, 최근 일부 판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제기된 정치권의 사법개혁방안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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