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뒤편 야산의 ‘레알텃밭학교’에 모인 학생들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저지르자” 대학생들 뭉쳐
고려대서 배추·무 심기 시작
경작 배우고 모기 뜯기고…
입소문 타고 다른 학교 전파
고려대서 배추·무 심기 시작
경작 배우고 모기 뜯기고…
입소문 타고 다른 학교 전파
대학에서 농사짓는 ‘레알학교’
14일 저녁 6시께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뒤편, 발길이 뜸한 야산 입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야산을 오른 이들은 책과 가방을 팽개친 채 목장갑을 두 손에 끼고 호미와 쇠스랑을 주워들었다. “오늘은 텃밭에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릴 거니까 어서 움직이세요.” 곽봉석(고려대 언론학부 4)씨가 두 평 남짓한 텃밭에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학생 11명에게 외쳤다. 캠퍼스에 텃밭을 만들고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 농사를 배우는 ‘레알텃밭학교’의 올해 두 번째 수업 풍경이다.
레알텃밭학교는 “막연하게 농사를 짓고 싶었다”는 곽씨와 그의 친구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해 봄 “무작정 저지르고 보자”며 고려대학교 안에 텃밭을 만들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전국귀농운동본부의 도움을 받아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텃밭학교를 진행했다. 학생 10여명이 매주 목요일에 모여 배추와 무 등을 심었고 귀농운동본부 강사로부터 경작 이론도 배웠다. 물론 농사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 밭 갈고 농작물을 키우는 일이 처음부터 수월하지는 않았다. 곽씨는 “유기농법을 실천한다고 농약 대신 소변을 받아 뿌려보기도 하고, 모기에 실컷 뜯기기도 했다”고 시행착오 과정을 설명했다.
‘스펙’ 쌓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대학생들이 왜 농기구를 손에 들었을까? 텃밭에 모인 학생들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김은하(고려대 영문학과 4)씨는 막연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땅에 씨를 뿌리자 농작물이 진짜로 자라는 모습에 재미를 느껴 텃밭학교에 열심히 나오고 있다. 김씨는 “키운 농작물로 비빔밥이나 김치를 담가 먹는 재미는 덤”이라며 활짝 웃었다. 처음 텃밭학교에 참여한 조희형(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1)씨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경험과 인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농어촌공사의 후원도 받게 된 레알텃밭학교의 ‘성공’은 다른 학교로도 전파되고 있는 중이다. 김근식(서울시립대 철학과 3)씨는 “상자에 흙을 담아 채소 등을 키우는 ‘상자텃밭’을 고민하다 우리 학교에도 텃밭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곽씨는 “국민대와 서울대 등에서도 텃밭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고 귀띔했다.
이날 학생들은 텃밭에 고랑과 배수로를 만들고 청경채와 감자를 심었다. 6월까지 고구마, 오이,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을 경작할 계획이다. 곽씨는 “취업 준비는 안 하고 농사에 미쳤다고 부모님에게 잔소리도 많이 듣는다”면서도 “설마 싹이 틀까 했는데 땅에서 농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에 항상 놀란다. 캠퍼스 안이라고 주저할 것 없이 일단 한번 저질러 보라”고 조언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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