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 숙직실에만 샤워실…임신않는 조건 보직 발령
무기계약직 고용 서류엔 ‘예산감축시 해고’ 표현도
무기계약직 고용 서류엔 ‘예산감축시 해고’ 표현도
“경찰서 간부 숙직실엔 개인 이불과 화장실, 샤워실이 있지만 일반 직원 숙직실은 쉬기조차 힘들 만큼 비좁다.” “하급자가 상급자의 논문과 리포트를 대신 써줘야 하고 이사까지 도와야 한다.” “여성 경찰이란 이유만으로 행사와 회식 참석을 종용받는다.”
경찰 내부 구성원들이 계급·성별·직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 털어놓은 불만의 목소리들이다.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실은 지난 2월21일부터 지난달 10일까지 경찰관·전의경과 일반직·기능직·계약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찰 안팎의 차별적 요소에 대한 162건의 의견을 받았다. 경찰이 조직 내부의 ‘차별적 현실’을 체계적으로 파악·분석해 개선책을 모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5일 <한겨레>가 경찰의 내부 의견 수렴 결과를 보니, 계급에 따른 차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의견(39건, 24.4%)이 가장 많았다. 직무 연관성이 적은 복장·시설 등에서부터 계급간 불필요한 ‘경계 짓기’가 비하감을 일으킨다는 불만들이 나왔다. 총경 이상 간부만 정복 소매에 금색 띠를 두르거나, 간부 전용 목욕탕이 따로 분리돼 있는 점 등이 계급에 따른 차별의 예로 지적됐다. 경찰청 의전 지침에 명시된 ‘굴신경례’(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란 용어에서도 구성원들은 차별을 느꼈고, 현충원 비석 크기가 계급별로 달라 ‘죽어서도 차별받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상급자의 개인 학위 논문과 리포트를 대필하거나 신임 관서장과 참모 발령 때 이삿짐을 대신 옮기고 간부 가족 심부름까지 하는 풍토도 문제로 꼽혔다.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둘러싼 쓴소리도 나왔다. 경찰청 본청의 한 부서에선 육아휴직을 인정해주지 않아 여경이 일선 경찰서로 전출해 육아휴직에 들어간 사례가 있는가 하면, 한 경찰서에선 ‘3년간 임신하지 않는 조건’으로 희망 보직으로 발령낸 경우도 있었다.
계약직 직원들이 느끼는 차별도 많았다. 책임감이 없다며 차 심부름 같은 잡무만 시키는 경우가 지적됐고, 무기 계약직 표준계약서 양식에 포함된 ‘예산 감축시 해고’란 표현이 위압적이란 평가도 나왔다.
지난 1월 말 ‘차별의 발견’이란 이름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실은 지난달 80여명이 참여한 워크숍을 거쳐 즉시 개선과제를 선정했다. △상급자의 사적 사역에 하급자 이용 금지 △계급별 목욕탕과 숙직실 구분 해소 △계약직 ‘예산 감축시 해고’ 표현 변경 등을 우선 바꿔야 할 사항으로 꼽았고, 다음주 중 조현오 청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장신중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장은 “‘차별’이란 단어 자체가 금기시되던 경찰에서 내부의 차별적 요소를 찾아 개선 계획을 짰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상급자들의 적지 않은 저항이 있겠지만 내부의 차별부터 극복해야 국민을 상대로 한 차별적 요소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설득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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