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하겠다며 4·19 민주묘지를 방문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왼쪽 둘째)씨가 4·19 관련 단체 회원들에게 저지를 당한 뒤 그를 호위하는 이승만기념사업회 회원들과 함께 묘역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4·19혁명 관련 3개 단체는 지난 18일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려고 4·19 민주묘지에 헌화·참배하는 행위를 거부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실력 저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양아들 이인수씨 묘지참배 시도, 4·19 단체들 저지
‘동상추진·건국대통령론 내세우면서…’ 진정성 의심
‘동상추진·건국대통령론 내세우면서…’ 진정성 의심
4·19 기념일을 하루 앞둔 18일 당시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한다는 성명을 낸 ‘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이승만사업회)의 간부와 회원들은 19일 국립 4·19민주묘지를 참배하려다 4·19 유공자와 유족들에게 저지를 당했다. 사과의 ‘진정성’을 둘러싼 이들 사이의 견해차는 이승만 동상 건립 움직임, ‘건국대통령론’ 등과 맞물리며 크고 넓은 간극을 드러냈다.
이날 오전 8시50분께 이승만사업회의 이인수 부회장 등이 탄 버스가 서울 수유동의 4·19민주묘지 앞에 나타났다. 4·19 유공자와 유족 30여명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나가”라고 소리치며 버스를 막아섰다. 이 부회장과 김일주 사무총장이 내려 사과성명을 발표하려다 이마저 여의치 않자 9시10분께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경호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승만사업회는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이 부회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사과의 진정성과 관련해 “(4·19) 당시 노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다”며 “(이런 사실을 아는 자신이) 더 늙기 전에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4·19 단체 쪽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4·19민주혁명회의 오경섭 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난 8일 (이승만사업회가) 보낸 성명서는 수신자가 ‘각 언론사 사회부장’으로 돼 있는 보도자료인데, 이걸로 사과하겠다는 것이냐”며 “진정으로 사과하려면 정중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19 관련 단체나 유족 쪽이 사과의 ‘의도’를 의심하는 배경에는 이승만사업회 등이 주도하고 있는 ‘이승만 복권’ 움직임이 있다.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이 회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명예회장,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이승만사업회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과 동상 건립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누리집에서 자평하고 있다. 이 부회장도 이날 회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의 선전에 휘둘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 가려졌다”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사랑회(회장 김길자)도 2008년부터 이승만 동상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서울시, 행정안전부 등에 청원을 하는 한편 100만인 서명, 10억원 모금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4·19 혁명을 유발한 3·15 부정선거를 당시에 몰랐고,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학생들이 희생된 점을 안타까워했다고 말했지만, 학계에선 그의 말을 뒷받침할 사료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한국현대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계에서의 엄중한 연구와는 동떨어진 주장으로, 이번에 나온 사죄도 이승만을 비호하는 일부 정치세력의 시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부회장과 관련해 “그는 이승만 옹호를 위해 비판자들에게 소송으로 압박을 가하는 등 일관된 입장을 취해온 사람”이라며 “그런 그가 (4·19로부터) 51년이나 지난 지금 갑자기 사죄를 말하는 이유나 배경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최근 법원에서 각하된 ‘제주4·3사건 희생자 결정 무효 확인’ 소송에 대해 이날 서울행정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자신을 비롯한 12명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사건법)에 따라 희생자로 결정된 1만3564명 가운데 18명의 희생자 결정은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패소하자 항소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당시 벌어진 두 사건에 대한 이 부회장의 대응은 이처럼 달랐다.
박태우 최원형 황춘화 기자 ehot@hani.co.kr
4·19혁명 51돌을 맞은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 유영봉안소를 찾은 한 유가족이 희생자들의 사진을 둘러보다 영정이 놓인 단에 잠시 손을 올리고 생각에 잠겨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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