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8일 연세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신형진씨와 어머니 이원옥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세대학교 제공
신형진씨, 모교 SW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 첫발
온몸 굳는 질환 이겨내고 9년만에 우수성적 졸업
손발 돼준 어머니 “기쁜 마음보다 책임감이 앞서”
온몸 굳는 질환 이겨내고 9년만에 우수성적 졸업
손발 돼준 어머니 “기쁜 마음보다 책임감이 앞서”
전신마비의 장애를 지닌 채 지난 2월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신형진(28)씨의 트위터와 블로그 대문에는 만화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 ‘코난’의 얼굴이 걸려 있다. 고등학생이던 ‘코난’은 갑작스레 7살 어린아이로 몸이 바뀌지만, 어른들 뺨치는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
신씨가 ‘명탐정 코난’처럼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얻게 됐다. 연세대학교는 21일 “신형진씨가 5월 무렵부터 소프트웨어응용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다”고 밝혔다. 학교는 “형진씨가 어떤 과제를 맡게 될지, 연구소 환경은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이제 논의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생후 7개월부터 온몸의 근육이 굳는 희소질환 ‘척추성 근위축증’과 싸워왔다. 160㎝의 키에 몸무게가 24㎏인 신씨는 현재 눈과 입만 움직일 수 있고, 휠체어에 누워 생활해야 한다.
온몸이 굳어 숨쉬기조차 힘들지만, 소년은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갔다. 여러 고비를 넘기며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과학과 수학 재능을 살려 2002년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부터 옆에 두고 좋아했던 컴퓨터를 전공으로 삼은 것이다. 눈의 움직임을 읽어 컴퓨터를 작동하는 안구 마우스가 언제나 그의 곁을 지켰다.
대학생활 역시 도전의 연속이었다. 체력적인 부담으로 학기당 2~3과목, 9학점밖에 들을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탄 채로 수업에 들어가고 대필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강의내용을 필기할 수 있었다. 2005년에는 폐렴을 앓으며 건강이 악화돼 2년여 학교를 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수학을 부전공으로 이수했고, 4년 평균 3.5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어머니 이원옥(65)씨가 묵묵히 그의 옆을 지켰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학교까지 아들과 함께 등교했고, 강의실 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씨는 “형진이가 시험 볼 때 생소한 컴퓨터 용어가 가득한 답안을 몇시간 적고 나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고 지난 9년 동안의 시간을 기억했다. 학교는 졸업식에서 어머니에게 명예졸업장을 주기도 했다.
그는 “형진이가 연구원이 됐다는 사실을 지난주 토요일 연락받았다”며 “기쁜 마음보다 아들이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앞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공부와 연구를 모교에서 할 수 있게 돼서 마음이 놓이는 것도 사실”이라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1994년에 설립된 소프트웨어응용연구소는 컴퓨터 그래픽과 인공지능 등 소프트웨어 응용과 정보통신 분야를 연구하는 곳이다. 신씨의 지도교수였던 이경호 교수는 “형진이가 한가지 주제에 몰두하는 데 뛰어난 점을 보인다”고 제자의 장점을 꼽았다. 이 교수는 “당장의 결과물을 바라기보다는 형진이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는 준비단계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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