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에 “일본상대 소송해 2천만원씩 주겠다”
총 15억 챙긴 혐의 유족회 전 대표 등 39명 입건
방송 인터뷰서 "사기 조심" 안심시키는 발언도
총 15억 챙긴 혐의 유족회 전 대표 등 39명 입건
방송 인터뷰서 "사기 조심" 안심시키는 발언도
경찰이,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보상금을 받게 해준다며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의 명목으로 15억원을 받아 챙긴 이들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2일 “일본 정부로부터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보상 소송단’ 등의 관련 단체를 만든 뒤, 모집책을 동원해 3만여명에게 15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상습사기)로 양아무개(67)씨 등 3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희생자 유족회 대표를 지낸 양씨와 관련 단체 임원을 맡고 있는 장아무개(64)씨, 임아무개(41)씨 등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거나 협상을 해 보상금 2000만원을 받게 해주겠다”며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변호사 선임 비용, 유족회 가입비 등으로 1명당 3만~9만원씩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양씨 등이 지난 2008년 5월 보도된 방송 뉴스에서 ‘유족에 대한 보상금 신청 대행을 빙자한 사기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며 “하지만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대일 소송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들이 피해자들로부터 챙긴 15억원을 모집책 수당과 사무실 운영비 등에 사용했고, 계좌에는 1억5000만원만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들에게 돈을 건넨 사람 가운데는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희생자가 아닌 사람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강제동원 희생자가 아니라도, 그 시기에 살았거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보상이 가능하다’며 피해자들을 속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씨와 그가 대표를 지냈던 단체의 일부 관계자들은 경찰의 수사에 반발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고, 정상적으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양씨는 이 단체가 지난 2004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 청구소송이 기각된 것을 알고 있다”며 “이후 소송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자들을 모집한 것은 사기 혐의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씨 이전에 이 단체의 대표를 지내며 소송을 이끌었던 김아무개씨도 “지난 2004년 소송에 참관했던 양씨가 소송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단체 이사회와 상의 없이 사람들을 모집했다”며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나 관련 단체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금 청구 소송을 여러 차례 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 정부에 보상했으므로 개인 청구권은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하거나 패소 판결해 왔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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