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토지 강제수용 맞서
주민들, 1000일간 매일 집회
“생계 이어갈 농지 요구할뿐”
주민들, 1000일간 매일 집회
“생계 이어갈 농지 요구할뿐”
2008년 8월1일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의 80여가구 주민들은 “고향에서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촛불을 들었다. 1996년 국방부가 ‘무건리 훈련장’의 확장 계획을 밝힌 뒤 12년 만에 사업을 진행하려던 참이었다. 주민들은 매일 저녁 8시 마을 안 직천초등학교(폐교)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27일 저녁 이들은 1000번째 촛불을 들었다. 주병준(53) ‘무건리 훈련장 확장반대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딴 데 가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며 “국방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의 평화가 깨진 것은, 국방부가 기존의 무건리 훈련장을 그보다 두배 가까운 3074만3801㎡(930만평)로 확장할 계획을 세우면서부터다. 오현리 일대에서 농사와 축산업을 하는 주민들의 토지 82만6446㎡(25만평)도 이 확장계획에 포함됐다.
2008년 9월 국방부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땅값을 쳐주고, 근처 가야리에 이주단지를 마련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주민들은 비현실적인 계획이라고 반발했다. 국방부가 1996년 훈련장 확장계획을 밝힌 뒤 오현리 땅값은 주변 마을 시세의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주 위원장은 “평당 22만원 안팎의 보상을 받고 평당 110만원을 내야 하는 이주단지로 옮기라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최아무개(55)씨는 “우리같이 소·돼지 키우며 사는 사람에게 이주단지로 가서 생계를 포기하고 집만 쳐다보고 살란 말이냐”며 얼굴을 찌푸렸다. 1000일 동안 주민들은 생전 처음 거리로 나와 트랙터 순례, 삼보일배를 진행했고, 국방부 앞으로도 여러 차례 달려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받지 않은 주민들의 땅은 법원에 공탁돼 국방부에 강제로 수용됐다. 주인이 떠난 땅이나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은 해마다 봄이 되면 포클레인이 군데군데 파헤쳤다. 정아무개(90)씨는 “3년 동안 논이고 밭이고 다 뺏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이 훈련장 확장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최씨는 “우리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에 협조하고 싶다”며 “단지 마을과 가까운 곳 30만평 정도의 땅에서 생계를 잇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국방부가 안전을 강조하지만 훈련장 주변을 지나는 56번 지방국도는 확장 공사가 진행중”이라며 “도로는 괜찮지만 주민들은 떠나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날 저녁 주민들과 지역단체들 50여명은 폐교 운동장에 촛불을 꽂아 두 글자를 만들었다. ‘희망’이라고 새겨진 촛불들이 이날 저녁 마을의 어둠을 밝혔다. 파주/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