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고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던 경주 불국사에서 스님을 모시고 친구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맨 왼쪽이 필자다. 흰 구름의 자유가 부러워 무작정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던, 꿈 많던 소녀 시절이었다.
[길을 찾아서]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⑤
고등학교 2학년 때 난생처음 가출을 했다. 어느 여름날 집 마루에 앉아 있는데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가는 걸 보는 순간 그 구름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좀 다닐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름이면 왜 하늘은 파란데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을 때 있지 않은가. 어쩌면 ‘무남독녀’라는 이름표가 붙어서 나도 모르게 부모님에게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좀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던 차에 떠가는 구름을 보고 자유의 부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어머니한테도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 담요랑 촛불이랑 몇가지 필수품들도 챙겼다. 그런데 막상 어디로 갈 것인가. 난 결국 학교로 갔다. 농구 훈련은 늘 어둑어둑해져 공이 안 보여야 끝났는데 그날 연습을 마친 친구들이 다 씻고 돌아간 뒤 나는 몰래 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경비 아저씨가 문단속 점검을 하러 왔다. 다행스럽게도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농구 선수인 줄 아니까 ‘아직 안 갔냐. 문단속 잘 하고 가라’ 하고는 지나갔다. 그때부터 나는 책상이랑 의자를 끌어다 누울 만큼 자리를 만들고 그 위로 담요를 덮어 텐트처럼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촛불을 켰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촛불을 켜놓은 채로 졸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그렇게 촛불 밑에서 책을 읽었다. 밤늦게까지 땀 흘려 운동을 해서 몸은 피곤한데도 책을 좋아해서 그 위험한 곳에서 책을 읽은 것이다. 나는 책을 무척 좋아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독서 노트를 만들어가며 책을 읽었는데 모두 200권이 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쓰러져 집에서 쉬고 있을 때도 내가 하도 책만 읽으니까 의사가 당분간 책을 읽지 않도록 주의를 주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책을 사다 주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가출 첫날 밤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촛불까지 얌전히 끄고 쭈그려 잤다. 아침에는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 책상을 정리해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수업을 했다. 그런데 오후 수업이 시작될 무렵 한 친구가 불렀다. “해숙아, 너 어머니 오셨어.” 나는 태연하게 “그래?”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어머니한테 해숙이 교실에 있다고 했고, 어머니는 그대로 조용히 돌아가셨다. 그다음 날도 나는 집에 안 들어갔고, 어머니는 또 찾아오셨다. 그러기를 사나흘, 교실로 도망친 나의 가출은 결국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여름날의 흰 구름은 언제나 내 마음을 그 시절로 데려가곤 한다.
그런데 그때 가출해서 교실에서 자면서 난생처음 들었던 한밤의 비둘기 울음소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교실 처마 밑에 비둘기들이 살았는데 낮에 날아다니는 모습은 참 좋았지만 그 울음소리는 너무너무 기분 나쁜, 귀신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긴 밤중에 혼자 교실 바닥에 누워 담요 둘러쓰고 듣는 소리였으니 무서울 수밖에, 솔직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저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새한테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까?’ 보이는 것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우리 때는 고3 때 교육학 시간이 있었는데, 하루는 담당 여선생님의 말씀에 유난히 귀가 솔깃해졌다. ‘무남독녀나 무녀독남은 특별교육학 대상에 속한다’는 이론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무남독녀는 요즘과는 달리 매우 드문 사례로 꼽혔기 때문이다. 지금은 외둥이가 대부분이지만 당시에는 ‘3남2녀’ 정도를 적당하다고 여길 정도로 대부분 형제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처럼 혼자인 아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성이 떨어지니 특별교육 대상에 속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사촌 언니, 오빠, 동생들이 함께 살면서 학교를 다녀서 혼자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나 혼자라는 느낌이 있었다. 마침 교육학에 나 같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론까지 있다니, ‘아 그렇구나. 나는 특수형 인간에 속하는 존재구나’ 새삼 공감을 했던 듯싶다.
전 전교조 위원장
구술정리 이경희 <한겨레 인기기사> ■ “1972년에도 드럼통 30~40개 캠프캐럴에 묻어”
■ 경찰청장 “수사권에 직위를 걸라” 대검차장 “조폭들이나 하는 얘기”
■ ‘이완용·최남선’ 논쟁적 인물 평전으로 되살린다
■ 민물고기가 상어로…미·유럽 유통 생선 25% ‘가짜’
■ 월급쟁이 로망 자극하는 ‘빌딩 투자비법’ 허와 실
■ 박지성 “팀 전원, 메시 감시해야”
■ 축구감독들 “차라리 잘됐다…끝까지 파헤쳐야”
구술정리 이경희 <한겨레 인기기사> ■ “1972년에도 드럼통 30~40개 캠프캐럴에 묻어”
■ 경찰청장 “수사권에 직위를 걸라” 대검차장 “조폭들이나 하는 얘기”
■ ‘이완용·최남선’ 논쟁적 인물 평전으로 되살린다
■ 민물고기가 상어로…미·유럽 유통 생선 25% ‘가짜’
■ 월급쟁이 로망 자극하는 ‘빌딩 투자비법’ 허와 실
■ 박지성 “팀 전원, 메시 감시해야”
■ 축구감독들 “차라리 잘됐다…끝까지 파헤쳐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